놀자, 책이랑 622

하얀 원피스 하나 갖는 일 / 김범송

김범송 선생의 9년만에 낸 두 번째 수필집이다. 오래 못 만난 선생을 만난 듯 반갑다. 선생과 오래전 추억이 떠오른다. 인사동에서 박 선생과 가끔 만나고 집에 초대받아 거하게 먹고 맛난 음식을 싸준 기억도 있다. 넉넉하고 다감한 품성이다. 글에 대한 열정도 꾸준하시다. 만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믿음직스럽다. 종부로서 대를 잇지 못한 죄가 백 년의 침묵으로 잦아든다는 마음과 딸이 주는 선물이나 용돈을 서서받는 기분이라는 마음에서 시대차를 느낀다. 요즘은 딸이 가정을 이끄는 주역이며, 결혼은 선택이고, 출산도 의무가 아닌 세상이다. 변하는 세태에 휘둘리지 않는 꼿꼿한 모습이 그려진다. 완고하기보다 유머를 장착하는 여유도 있다. 은 끝내 까지 갔다. 성공이다. 잘 살아오신 시간과, 잘 살고 계신 나날에 경의를..

놀자, 책이랑 2024.10.06

인간• 철학• 수필 / 철수회 14인의 철학수필• 6

​' 써라, 그래야 존재할 것이다. 읽어라, 그래야 단어들은 살이 오르고 동사들은 피가 돌 것이다. ​언어의 힘으로 무기력한 시간, 벌거벗은 공간, 존재자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철학이고, 언어의 마법으로 나의 내면과 주변에서 스멀거리고 웅성거리고 솟구치는 욕망을 노래하는 것이 문학이라 생각합니다. '​- 송마나 선생의 시작 글에서부터 허리를 곧추세웠다.​《철학 수필 6권》을 펼치며 예감은 했지만 역시 철학과 문학의 어울림판이 놀이가 아닌 공부판이다. 올해의 공통주제는 '신神'이다. 느슨해진 정신을 일깨우고, 민무늬가 되어버린 감성에 파격의 획을 찾는다. 나는 시험볼 시기가 지나고서야 공부가 재미있어졌다. 공부를 놀이로 생각하지만 이번엔 빡셀듯 하다. 그래서 더 반갑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책과 작가..

놀자, 책이랑 2024.10.01

선택적 친화력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페북에 장희창 선생의 장대한 해석을 읽고 주문했다. 어려운 해설보다 소설은 재미있다. '독일 문학 최초의 사회 소설로 평가받은 걸작' 이란다. 경험하지 않은 것을 쓰지 않았다는 괴테, 그러나 경험을 그대로 쓴 것은 한 줄도 없다는 괴테의 말이아리송하게 들린다. 이 소설은 지극한 사랑이야기이기도, 불륜 소설이기도 하다. 친화력이란 두 물질이 서로 상호작용으로 새롭게 결합하는 현상을 뜻하는 화학용어다. 부모의 반대로 결혼에 이르지 못한 에두아르트와 샤를로테는 배우자가 사망하고야 재혼을 했다. 그런 그들의 일상에 에두아르트의 친구 대위와 샤를로테의 양녀 오틸리에가 함께하며 엇갈린 열정에 치닫는다. 분별력과 도덕은 열정을 잠재우지 못한다. 비극적 종말은 당연한 귀결이라 오히려 아쉽다. ​아름답고 순진하기만 한 ..

놀자, 책이랑 2024.09.29

그래도 괜찮아 / 사노 요코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를 통쾌하게 읽은 기억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사노 요코의 책을 주문했다. 가볍고 편한 책인데, 한참 걸렸다. 그때의 시원한 문장을 기대했는데 왜 이리 싱겁지... 이런 생각이 들어 밀어두었다. 어젯밤 다시 잡아 다 읽고 보니, 이게 전형적인 수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시점이 아니라 10대, 20대의 이야기들이 많다. 그의 주변인들의 특별했던 감흥을 전한다. 남다른 시선과 반응에 가슴이 뜨듯해진다. 사노 요코는 2010년,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더 살았으면 솔직한 노인의 시선으로 더 공감할 글을 썼을 텐데... . 옮긴이의 말에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쟁쟁한 작가들과 아들 히로세 겐, 그리고 전 남편이자 일본의 '국민 시인'인 다타니와 슌타로까지 함께 모여 『100만 분의 1..

놀자, 책이랑 2024.09.22

방향을 버리면 바다가 열린다 / 차미란

차미란 작가는 2년 전 등단작 부터 남달랐다. 사회문제를 돌아보며 글쓰기에 대한 치열한 열망을 토로했다. 준비된 신인이라 반가웠다.​ 기대대로 첫 에세이가 단숨에 읽힌다. 여행기로 발표하려고 작심을 한 글이다. 그야말로 기획출판이다. 남들의 여행를 바라보며 아쉬웠던 일을 홀로 여행하며 세세히 풀어놓았다. 중간중간 소개하는 책들도 적절하고 친절하다. 여행한 이야기를 곁에서 조근조근 들려주는 듯하다. 푹 빠져서 들었다. 아타까운 장면, 가슴 쓸어내는 순간도 연신 끄덕이며 페이지를 넘겼다. 오래 다지고 연마한 솜씨로 거침이 없고 편안하다. 잘 읽지않는 '해설'까지 과하지 않아서 계속 끄덕거리며 읽었다.  1장 라오스, 라오스는 내가 못 가 본 나라다. 마르셀 에메의 『생존시간 카드』에 나는 영화 '인타임'을 ..

놀자, 책이랑 2024.08.26

내게 문학이 있어 행복하였네라 / 한상렬

수필집으로는 20집, 평론집, 창작서 등을 합해 84권째 책이다. ​내 스승인 운정 선생님의 50년 수필 사랑이 지극한 마음과 새로운 수필을 추구하는 외침이라면눈재 선생님의 40년 수필 사랑은 열혈 실천형이다. 끊임없이 읽고, 연구하고, 비평하며, 창작한다.隨生隨死의 삶, 마지막까지 수필의 현역이고 싶은 바람이 같은데 운정 선생님은 지금 누워계신다. 운정 선생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눈재 선생님을 바라보니 송구스럽다. 수필을 허투루 쓴 적도, 가볍게 생각한 적도 없는데 ... .​눈재 선생님의 몰랐던 면모를 본다. 노나라 때에 훌륭한 목수 '재경'을 떠올리게 하는 목수 아버지, 평교사로 퇴직한 천생 교육자로서 꼿꼿한 성정, 80년도 가톨릭 한국성인 《103위 성인전》 전 5권과 여러 성인전을 집필했..

놀자, 책이랑 2024.08.13

눈물꽃 소년 / 박노해

여러번 울면서 읽었다며 다음씨가 가져다 준 책이다. 오이지와 고춧가루와 함께. 잠깐 차 한 잔 마시고 갔다. 그제, 오우가 모임날이었다. 다시 성당 봉사일로 바쁜 몸이 되었다. 앞으로 임기 3년 '죽었다' 생각하기로 했다고. 천직인듯 봉사하는 그를 만나고 나면 난 자꾸 부끄러워진다. ​다음씨 감성에 착 붙는 내용이다. 박노해가 본명 박기평으로 산 국민학교 시절 이야기다. 그의 빛나는 감성이 싹트고 자라던 텃밭이 훤히 그려진다. 좋은 어른들과 나쁜 선생, 좋은 선생이 곁에 있었고, 어려서부터 심지깊은 올곧은 정신은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의 유산이다.가슴 뻐근한 순간은 많았지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연신 끄덕이며 마음으로 그의 등을 토닥였다.잘 커줘서 참 고마운 소년이다. 박 기 평. ​​* " 아들, ..

놀자, 책이랑 2024.08.10

나의 돈키호테 / 김호연

어제 권 동지에게 선물받은 책이다. 김호연 작가 북토크에 가서 사왔다고 한다. 을 후르륵 읽은 기억이 있다. 재미있게 잘 쓰는 작가다. 이 책도 한 달만에 6쇄를 찍었다. 가독력이 좋다.박진감 있는 드라마를 보는 듯 계속 읽을 수 밖에 없어서...... 다 읽었다잊고 사는 을 불러일으켰다. ​​* 구독자가 500명을 넘어섰다. 천 명이 되면 광고 신청도 할 수 있다는데... 이게 대체 뭔 일이지? 구독자가 며칠 사이 가파르게 늘자 앉아 있어도 날아다니는 기분이었다. 다음 콘텐츠를 기다린다는 댓글도 많아졌고 뜬금없는 외모와 목소리 칭찬까지 듣자니 민망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64쪽)​* "초등학생 때 내가 '아빠, 부자 되세요!'라고 새해 인사를 했더니 버럭 화를 내는 거야. 그때 그 광고가 인기..

놀자, 책이랑 2024.08.09

점선뎐 / 김점선

오랜만에 점선뎐을 다시 펼쳤다. 2009년 3월 초판 2쇄다. 모서리를 접고 줄친 부분도 있다. 스토리 위주이기때문에 읽으며 생각이 난다. 이 책에 없는 스토리까지 떠오른다. 별난 여자, 아니 여자이기를 거부한 자유인 김점선. 자신있게 자신의 삶을 결정하며, 그야말로 짧고 굵게 살다 갔다. 이때 '자뻑'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다. 이렇게 용감하고 솔직하고 맹렬한 사람은 없다.예전처럼 밑줄을 긋는 대신 포스트잇을 붙이며 읽었다. 이 치열한 자유혼이 내게 전염되기를.​언니가 가꾼 풍성한 꽃밭의 꽃색깔보다 자신이 가꾼 엉성한 꽃밭의 꽃이 짙은 붉은 색으로 이뻤다. 처음 자부심을 느끼며 기뻐한다. 다섯 살때 기억을 이렇게 풀어낸다. 싹부터 달랐던 김점선이다. ​* 그 후부터..

놀자, 책이랑 2024.08.03

따뜻함을 찾아서 / 왕은철

뜨거운 날에 라니... 실없이 맘이 뜨거워진다. 여름엔 땀을 흘려야 해. 이렇게 세뇌를 하면서 선풍기도 멀리하면서 읽었다. 동아일보에 '스토리와 치유'라는 제목으로 쓴 칼럼을 선별한 글이다. 짧은 글이다. 그럼에도 책이나 음악, 그림, 작가를 데려와 정신차릴 마음을 불러온다.'축복이나 은총처럼, 거리에서 우연히 들은 음악처럼' 작가의 말이 소박하다. 달관에 이른듯. 거듭 읽어야 할 구절이 많다. ​​* "차라리 세익스피어를 못 읽고 괴테를 몰라도 이것은 알아야 한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절반쯤 읽다보면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이것'은 사육신의 기개를 일컫는다. ... 그런데 그의 거대담론에는 빠진 것이 있다. 여자들의 고통이다. 세조는 1456년 9월, 단종 복위 사건 주모자들의 집안..

놀자, 책이랑 2024.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