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654

보리누름 축제 / 박인목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모범답안이 될만한 책이다. 큰 상처 없이 건실하게 살아온 나날과 성실하게 살고 있는 일상을 힘 빼고 기록했다. 힘 빼기가 어렵다는 걸 아는 사람은 이 편안한 서술에 금세 마음이 열릴 것이다. 나같은 도시촌놈은 짐작도 못한 먼 옛이야기로 들리는 '보리누름' 이 보리밟기가 아니란 것도 알게되었다. 보리 싹이 나온 것을 언땅에 뿌리가 제대로 내리라고 눌러주는 것이라고 한다. 버스차장 이야기는 나도 건너온 시간인데 결이 한결 따듯하다. 치열하게 살아낸 나날이 배경으로 짐작된다. 가끔 과음으로 인한 에피소드가 있지만 슬몃 웃음짓게 한다. 보기드문 '바른생활인'이다. 세무전문가로서 전해주는 정보도 새롭고 배울만한 점이 많다. 지나온 시간과 나아갈 시간이 모두 축제임을 곁에서 이야기하듯..

놀자, 책이랑 2025.02.21

그림자의 강 / 리베카 솔닛

연천 동네책방에서 사온 책이다. 읽는데 한참 걸렸다. '이미지의 시대를 연 사진가 머이브리지'가 살아낸 시대를 재구성했다. 곁에서 바라본 듯, 가까운 시선으로 그의 모든 것은물론 그가 담겼던 시대상까지 세세히 들여다본다. 필연의 고리가 훤히 꿰어지도록. 아내의 정부를 죽이고 살인범이 되었으나 배심원들이 입장바꿔 생각하며 풀려났다. 그 시대상이 그려지는 대목이다. 너무 어린 아내, 플로라를 선택한 게 불운이다. 두 아이를 사산하고, 세번 째 아들을 낳고 정부가 남편에게 살해되고, 이혼을 요구하다 병이 들어 죽은 플로라는 스물네살이었다. 자유연애와 여권운동이 혐오의 대상이던 시대다. ​​작가연보가 15쪽, 각주가 41쪽에 달한다. 한 세기 전 사람을 기록함에 있어 이런 치열함이 필요하다. 숙연해졌다. 유난..

놀자, 책이랑 2025.02.19

가문비나무의 노래 / 마틴 슐레스케

바이올린을 제작하는 마틴 슐레스케의 영적 기록이 음악으로 울려퍼진다. 도나타 벤더스의 사진은 참으로 깊다. 가만 바라보면 빠져든다. 모든 일에 깨어있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바라보며 자세를 바로 잡는다. 오랜만에 청정지역을 다녀온 듯 맑은 기운을 받았다. ​​* 헤세는 "나무는 내게 언제나 사무치는 설교자였다. 나무와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 나무에 귀 기울일줄 아는 사람은 진리를 경험한다. 나무는 교훈이나 비결을 설교하지 않는다. 삶의 가장 근원적인 법칙을 노래할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무는 삶의 원리를 보여 줍니다. 뿌리는 나무에 양분을 공급할 뿐 아니라, 나무에게 양분을 얻기도 합니다. 뿌리 역시 잎이 만든 영양이 필요하니까요. (25쪽)​​​* 좋다고 여기는 것, 칭찬할 만하다고..

놀자, 책이랑 2025.02.14

사와로 선인장 / 엄옥례

봉화는 엄옥례 작가가 태어난 곳이다. 청량산이 있는 봉화는 오래전, 다정한 기억이 있다. 순박한 산세가 곧고 고운 마음의 작가를 키워냈는지도 모른다. 독서심리상담사로 활동하며 느낀 이야기들이 새롭다. 독서로 심리상담을 하며 치료가 된다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책이 사람을 새롭게 키운다고 생각하니까. 좋은 책은 그러하지만 곁에 두어야만 얻을 수 있는 일이다. 그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일테니 참 보람된 일이리라. 당차게 확신하며 선택한 결혼 생활을 잘 헤쳐온 저력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웃는 얼굴을 만든 듯 하다. 처음엔 상큼하게 시작했는데 계속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만큼 삶이 녹록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주위에 시선을 넓히는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 * 글을 쓰다보니 나에게만 쏠렸..

놀자, 책이랑 2025.02.12

프랑스, 문학과 풍경이 말을 걸다 / 장금식

파리가 제2의 고향같다는 장금식 작가가 프랑스 소설과 그림의 배경지를 직접 탐방하며 조명한 책이다. 몇몇 잡지에 연재한 작품으로 '에세이 같은 리뷰' '평론 같은 리뷰'의 성격으로 부드럽게 썼다.그의 열렬한 작가의식과 부지런함을 알고 있다. '노마드의 꿈을 담은 리뷰집'에 박수를 보낸다. 반가운 작가들이 많다. 오래 전에 읽은 소설들을 더듬어 본다. 친절하게 스토리를 알려주고, 우리가 알아야 하는 점들도 짚어준다. '선생님'다운 면모가 드러난다. 그의 열린 정신에 나는 계속 끄덕이며 읽었다. '찌찌뽕'을 해야하는데...드물게 작동하는 내 수다 욕구가 마구 피어난다.​​​* 에밀졸라는 의 성공으로 돈도 많이 벌어 파리 근교 메당이라는 곳에 멋진 집을 샀다는 이야기도 작품의 유명세만큼 유명하다. .... 1..

놀자, 책이랑 2025.02.09

OST, 그 이야기의 시작 / 김소현의 영화에세이

절친 소현씨의 세 번째 책이다. 영화음악의 진수를 보여준다. 내가 푹 빠지지 못했던 영화, 음악까지 책을 읽으며 계속 찾아 들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성공한 거다. 몰랐던 음악 배경과 역사, 상식을 많이 알게 되었다. 20여년 전 수필반에 처음 왔을때가 선하다. 멋진 모습에 까칠한 인상이었다. 과묵한 윤교수님이 '비보통'이란 별칭을 지으셨을 정도다. 분당수필문학회 회장을 하며 그 모서리가 둥글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두루뭉수리 (?)하지는 않다. 그 민감함이 그의 매력이다. '겉빠속촉'이 떠올라 혼자 웃는다. 속정이 많지만 쉬이 드러내지 않는다. 음악에 진심인 그의 삶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아낌없이 박수보낸다. 오랜 시간 함께한 여행지와 공연이 소환되어 더 좋았다. ​​ * .....어디서건 시끄..

놀자, 책이랑 2025.02.02

성남문예비평지 <창>16집

비평지 지원금이 절반으로 줄었다. 인터넷 판만 만들자고 했는데... 종이책으로 밀고 나갔다. 두께를 줄이고 출간부수를 줄였다.사무국 식구들이 고생이 많았다. 12월에 나왔는데 오늘에야 권 편집장과 만나 사무국 젊은 (어린) 직원들과 점심을 먹고 ... 얘기도 많이 하고, 책을 가져왔다. 올해에는 제대로 풀리기를.성남시의 지원금으로 성남시에서 하는 문화관련 일들을 비평하는, 의미있는 일이다.2014년 창간호부터 10년이 되었다. 중간에 몇 년은 한 해에 두 권을 낼 열정이 있었다. 이제 그 열정은 식었어도 보람된 일이다.​​​​​​​​​​

놀자, 책이랑 2025.01.13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 파리 리뷰

'새로운 글쓰기에 도전하는 문학 실험실' 편집자의 말이다. 15편의 단편소설이다. 기발하다 못해 기이한 발상에 고개를 갸웃거린 작품이 많다. 15인의 추천 작가가 쓴 작품평이 있다. 무릎을 치게 하는 구절을 자주 만난다.특히 마지막 작품. 을 읽고 속이 울렁거린다. 이런 미친, 상상력이라니.​한참 전에 사두고 야금야금 ~ 속시끄러울 때 푹 빠져들고 싶은데 만만치는 않다. 단숨에 읽혀지지 않는, 뭔가 궁금해지는, 이럴 수 있나, 이건 아닌데... 이런저런 의문이 꼬리를 잇는다. 이건 픽션을 논픽션으로 읽은 내 습성때문이다. ​​두꺼운 책 읽을 때 요긴하게 쓰이는 책누름이, 며늘의 선물이다. 별 게 다 있다.​​​* 노스텔지어는 구체적이고 세밀한 감각이 쌓일 때 생긴다. 다시 말해 작가들의 진부한 문구인 "..

놀자, 책이랑 2025.01.10

초록설법 / 홍일선

저들은 어쩌자고... 저리 부끄러움을 모르는지.120년 묵은 적폐들이 본색을 드러낸다.친일 청산을 못해 주춧돌이 부실하다. 심란해서 일이 손에 안 잡힌다. ​마음 다스리려고 며칠 전에 받은 홍일선 선생님 시집을 다시 잡았다. 낮고 지순한 음성 에 귀기울인다. 한 점 부끄러울 것 없는 농부시인의 지극한 말씀에 부끄러움이 몰려온다.깊이 고개숙인다. 홍 시인님 강녕하소서.​​​절 하소서​아침에 들녘 향하다가맨 먼저 눈 마주친 이가도리 노인회장님이 아니옵구띠풀 하찮은 초개였더라도그에게 절하소서바뻐 절 못하였다면해질녘 돌아오다가 만난 이가반딧불이 푸른 신령이 아니옵구하필 검은 비니루들이었더라도그에게 절하소서 ​​​​밭의 신령들​캄캄한 밤잠든 밭 깨실지 몰라조용조용히 밭에 간다귀한 손님 반딧불이 보러 가는 게 아니..

놀자, 책이랑 2025.01.06

나는 내가 어려워 넌 어때 / 진 민

기다리던 진민씨 책이 나왔다. 책 묶으라는 종용을 잊어버린지가 10년도 더 된 듯 하다.자신을 '어리바리 날라리'라고 했지만 절대 어리바리 날라리가 될 수 없는 지나친 모범생이다. 여전히 애인같은 남편과 격하게 예의 바른 외동딸 다린의 모습을 일찌기 봤다. 두 사람의 수줍음 가득한 얼굴에 '착함'이라고 써 있었다. 책에 자주 나오는 말, '사람 변하지 않는다.' 진민은 의리를 중히 여기는 인정많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사람을 꿰뚫어보는 심안이 있어 기준에 어긋나는 꼴을 잘 알아낸다. 어쩌면 이것도 인간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2006년 등단한 에 '조직적 측면에 애정을 가지고 활동했다'던 게 떠오른다. 멀리서 제일 일찍 와서 책상을 정리하고 차를 타서 선배님들께 나누던 모습이. 가끔 소소한 선물로 마음까..

놀자, 책이랑 2024.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