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프랑스, 문학과 풍경이 말을 걸다 / 장금식

칠부능선 2025. 2. 9. 23:11

파리가 제2의 고향같다는 장금식 작가가 프랑스 소설과 그림의 배경지를 직접 탐방하며 조명한 책이다.

몇몇 잡지에 연재한 작품으로 '에세이 같은 리뷰' '평론 같은 리뷰'의 성격으로 부드럽게 썼다.

그의 열렬한 작가의식과 부지런함을 알고 있다. '노마드의 꿈을 담은 리뷰집'에 박수를 보낸다.

반가운 작가들이 많다. 오래 전에 읽은 소설들을 더듬어 본다.

친절하게 스토리를 알려주고, 우리가 알아야 하는 점들도 짚어준다. '선생님'다운 면모가 드러난다.

그의 열린 정신에 나는 계속 끄덕이며 읽었다. '찌찌뽕'을 해야하는데...

드물게 작동하는 내 수다 욕구가 마구 피어난다.

* 에밀졸라는 <목로주점>의 성공으로 돈도 많이 벌어 파리 근교 메당이라는 곳에 멋진 집을 샀다는 이야기도 작품의 유명세만큼 유명하다. .... 1898년 드레퓌스 사건의 불의를 고발하기 위해 썼던, <나는 고발한다>도 이 집에서 발표했지만 정치적 사건에 휘말리다 1902년 이 집에서 의문의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다. (22쪽)

* '그냥'이라는 단어가 <고리오 영감> 책에 닿아 21세기판 새로운 문장들로 거듭나기를 기대하며 두꺼운 책을 덮고 몇몇 질문을 해본다. '19세기 다소 타락한 면이 있는 프랑스 사회에서 21세기 한국 사회상이 보이는가?' '사치와 낭비로 탕진하는 자식을 무분별하게 돕는 고리오 영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돈과 인간의 허욕이 빚어낸 희생의 진정한 의미는?' '리어왕과 고리오 영감의 차이점은?' (49쪽)

* 19세기 말 불안한 프랑스 사회상을 보여준 사건이다. '프랑스 제3공화국이 독일과의 전후 관계에서 유대인 혈통의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에게 스파이 혐의를 부당하게 씌우면시 이를 둘러싸고 프랑스에서 극심한 정치적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사건'이다. 에밀 졸라는 이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그런데 졸라가 의문의 죽음을 맞자 그의 장례식에서 아나톨 프랑스는 "진실과 정의의 수호자에게 바치는 경의"라는 글로 애도와 아울러 이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65쪽)

* "무지는 행복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모든 것을 안다면 우리는 삶을 한 시간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 아나톨 프랑스 <에피쿠로스의 정원> (67쪽)

* 3시간 걸려 도착한 곳은 전화와 문자가 안 되는 깊은 산속, 소나무 정원이다. 개인의 영달이 아닌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인류를 위해, 세상을 위해 기도와 수행 정진하는 신부님들의 집, '오상영성원' 수도원이다. .... 소나무 속성을 생각하는 순간 또 하나의, 인간의 본성을 읽게 된다. 거친 껍질 사이사이 숨겨둔 착한 본성이, 인간에게 주기만 하는 소나무처럼 흐트러짐 없이 베푼 그 미덕을 볼 수 있다. (97쪽)

* 소설을 통해 유럽과 프랑스가 전범자 청산을 한 과정을 벤치마킹해 우리의 역사도 그 부분을 해결해야 할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질문을 던지고 싶다.

- 지금이라도 친일파를 색출해 처벌해야 할까? 화합의 리더십으로 통큰 용서를 해야 할까?

- 누가 나의 불행을 딛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면 어떻게 사는 게 가치로운가? 불행의 발판이 되어준 사람의 입장과 행복을 누리는 사람으로서의 입장, 양쪽 입장이 다 되어보고 자신에게 답을 한번 내어 보면 어떨까? (107쪽)

미셀 깽의 역사 소설 <처절한 정원>을 읽은 배경은 양양의 소나무 숲이다. 내가 갔던 곳이라 그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처절한 역사를 증언하는 일은 힘이 든다. 홀로코스트 소설의 전범으로 비장미, 숭고미, 골계미, 우아미를 갖췄다니 읽지 못한 이 책을 주문해야겠다.

센강의 유람선은 낭만을 떠올린다. 작가가 연애하던 시절을 회상한다.

갈등과 충돌로 어려움이 있는 사람에게 기욤 뮈소의 <7년 후>을 권한다.

* 가믈랭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대혁명이 평등을 정착시킬거라고는 말하지 마라. 사람들은 결코 평등하지 못할 거니까. 그건 불가능한 일이거든. 그러니 아무리 나라를 뒤집어봤자 소용없어."라고.

평등! 민중을 중심으로 이뤄낸 혁명 기간에도 세금을 내지 못하면 선거권을 받지 못하도록 만들어놓은 법이 있었는데 어떻게 평등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자유! 자유 아니면 죽음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공포정치와 혁명정부의 또 다른 도구로 사용하지 않앗을까. 박애! 인격과 인간애를 찾아볼 수 없는 박애는 헛말에 불과한 것이리라. (167쪽) 아나톨 프랑스 <목마르다, 신이시여!>

* 18세기가 아닌 21세기다. 폭력이 아닌 촛불로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신성한 촛불이 꺼지지 않고 목마른 자들의 희망이 되어주기를 소망한다. 두 손으로 모아든 초도 굽어지거나 휘지 않기를. 영원히 활활 타올라 우리 사회의 진정한 정의가 구현되기를 염원하다. (168쪽)

* 돌아오는 길에선 고흐의 고독 때문인지 피곤이 밀려온다. 내가 그의 밀밭을 갈고 온 듯 온몸이 뻐근하고 쑤신다. 고독의 밭을 쑤셔놓고 오긴 했다. 외로움에도 고저장단이 있을 듯 하루에도 그 간극이 얼마나 크게 왔다 갔다 했는지 내가 그의 마음에 공감해주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까 싶어서였다. 우와즈 강의 강물은 그의 생을 어떻게 해독했을까 내내 궁금했다. 그의 미완의 고독을 풀어냈을 까. 사람은 사라지고 그림과 흔적만 남은 동네가 또다시 누군가의 새 캔버스가 되어주리라. (1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