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들은 어쩌자고... 저리 부끄러움을 모르는지.
120년 묵은 적폐들이 본색을 드러낸다.
친일 청산을 못해 주춧돌이 부실하다.
심란해서 일이 손에 안 잡힌다.
마음 다스리려고 며칠 전에 받은 홍일선 선생님 시집을 다시 잡았다.
낮고 지순한 음성 <초록설법>에 귀기울인다.
한 점 부끄러울 것 없는 농부시인의 지극한 말씀에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깊이 고개숙인다. 홍 시인님 강녕하소서.
절 하소서
아침에 들녘 향하다가
맨 먼저 눈 마주친 이가
도리 노인회장님이 아니옵구
띠풀 하찮은 초개였더라도
그에게 절하소서
바뻐 절 못하였다면
해질녘 돌아오다가 만난 이가
반딧불이 푸른 신령이 아니옵구
하필 검은 비니루들이었더라도
그에게 절하소서
밭의 신령들
캄캄한 밤
잠든 밭 깨실지 몰라
조용조용히 밭에 간다
귀한 손님 반딧불이 보러 가는 게 아니라
호미 찾으러 가는 게 아니라
미움 모시고 사는 야생화 일가들
그중 많이 미워한 방동사니에게
가을이 가기 전에
송구하다는 말 전하러 간다
밭둑에 두고 온 슬픔 찾으러 간다
신령님들 말씀 들으러
나 밭에 간다
벼락
먹구름 꽃 사이
쿠르릉 쿠르릉 번쩍…
희디흰 섬광 벼락 신령께서
야만의 마을을 심방 나오신 것입니다
세상은 순식간 무명으로 가득 차
아직 거짓을 모르는
보랏빛 도라지꽃만 오롯하셨는데
시를 써서 세상을 숱하게 기망한
나는 숨을 데를 찾는 것이지만
사방에서 끈달아 쿠르릉 번쩍!번쩍!
이놈 고얀 놈 벼락 맞아 죽을 놈
그래도 사무사思無邪냐고
아직도 사무사냐고
일갈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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