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진민씨 책이 나왔다. 책 묶으라는 종용을 잊어버린지가 10년도 더 된 듯 하다.
자신을 '어리바리 날라리'라고 했지만 절대 어리바리 날라리가 될 수 없는 지나친 모범생이다.
여전히 애인같은 남편과 격하게 예의 바른 외동딸 다린의 모습을 일찌기 봤다. 두 사람의 수줍음 가득한 얼굴에 '착함'이라고 써 있었다. 책에 자주 나오는 말, '사람 변하지 않는다.'
진민은 의리를 중히 여기는 인정많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사람을 꿰뚫어보는 심안이 있어 기준에 어긋나는 꼴을 잘 알아낸다. 어쩌면 이것도 인간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2006년 등단한 <현대수필>에 '조직적 측면에 애정을 가지고 활동했다'던 게 떠오른다. 멀리서 제일 일찍 와서 책상을 정리하고 차를 타서 선배님들께 나누던 모습이. 가끔 소소한 선물로 마음까지 따뜻하게 하던. 하지만 그때 그걸 말렸어야 했나? 말릴 수 있었을까? 오직 글쓰기에 정성을 쏟았어야 했다고...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한참 지나서 그의 열렬한 페북 활동을 보면서 다시 생각했다. 글보다 삶이다. 머릿속에서 난무하는 문자보다 관계를 통해 몸에 새기는 것이 상위일수 있다. 사람에 상처받고 사람으로 인해 위로받으며 나아가는 게 삶이다. 나도 그때 그의 말을 듣고 페북을 시작해서 어슬렁거리고 있다.
그때 '선배님'이던 호칭이 좋았다. 지나치게 깍듯하면서도 '술'을 함께하며 살짝 풀어졌던 모습들도 좋았다.
펀딩한 책을 어제 받아서 단숨에 다 읽고,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귀복스럽게, 진민답게 잘 이겨내리라 믿음이 왔다.
연인같은 남편과 마음까지 이쁜 다린, 참 고맙다.
유머와 위트를 놓지 않고, 다정함을 장착한 모범적인 아만자, 진민~~ 고맙고, 고맙다.
* 잠시 언짢은 일이 생겨서 속상한테 조용히 눈을 감고 입꼬리를 있는 힘껏 쭈욱 올렸다. 마음이 풀릴 줄 알았는데 깨어보니 아침이었다. 흠, 역시 효과 만점이야, 아니, 하다 보니 최면뿐만 아니라 수면 유도까지 되는 거였네. 살다 보면 타인과 상관없이 본인 스스로 옹졸해지거나 비루해질 때가 있는 법이다. (75쪽)
* 부끄러움을 상실하는 건 질 나쁜 '나이 듦'이다. 아는 것도 없이 주장하거나 싫어하는 줄도 모르고 나대거나 딱 이만큼인데 저만큼까지 나가는 걸 알면서도 눈 질끈 감는 일이기도 하다. (159쪽)
* "엄마가 말이지, 사람 하나는 참 잘 보는 거 같지 않니?"
딸아이가 다소곳하게 웃으며 수긍한다.
"엄마 근데 난 사람을 잘 못 보나봐, 사람들이 나더러 편견이 없대."
딸의 한마디에 깨끗하게 완패다! (200쪽)
* 신혼부터 난 그이의 발을 씻겨주고 싶었는데 아직 단 한 번도 그 소원을 풀지 못했다.
딱 한 번만 내 발 말고, 네 발을 씻겨줘 보고 싶다고 하니 그에게 돌아온 대답이다.
"나 죽거든 씻겨줘. 내 양손 멀쩡한데 내 발을 당신이 왜? 궂은 일을, 민망하게 ...."
아뿔사! 그거였어. 그이나 난 늘 서로에게 밝고 맑고 깨끗한 것만을 원하는 거지. 이쯤 되면 반론이 참 많겠구나 싶다. (294쪽)
* 흉추 3번으로 전이된 신장암, 그래서 난 얼결에 4기라는 걸 알게 됐고 5년 생존율이라 봐야 20%라니 알량한 숫자 개념보다 오직 하나님 뜻에 달렸다고 믿고 낙담은 안 하는 거로 밀어붙였다.
물론 말이 쉽지, 많이 혼란스럽고 가족에게 너무 미안했다. 안 아플 때도 마냥 어리바리하고 날라리 같은 아내이자 엄마였는데 아픈 뒤에는 거의 집 병원, 병원 집이 전부인 일상이었고 내게 남은 시간을 가늠하며 웃어야만 했다.
.....
오래 살고 싶다.
오래 살거다.
.....
진민, 너의 의지대로 남은 생, 멋지게 무엇보다 투지를 다한 치병으로 마무리 잘하자. (333쪽)
'놀자, 책이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 파리 리뷰 (0) | 2025.01.10 |
---|---|
초록설법 / 홍일선 (0) | 2025.01.06 |
『The 수필 2025 빛나는 수필가 60』 (0) | 2024.12.24 |
백년의 고독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0) | 2024.12.17 |
푸른 들판을 걷다 / 클레어 키건 (0) | 2024.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