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사람이랑 904

20일 금주

한약을 먹는 20일동안 금주다. 몸에게 아부하느라 먹는 약이다. 기력이 떨어지는 걸 느끼니까. 내 과다한 노동량을 생각하면 몸에게 충성해야 한다.이번 약값은 승진이가 냈다. 20일 동안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고 보니 매주 수요일 마다 맥주에 막걸리를 마셨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음료수 마시듯 마셔 온 것이다. 제대로 술을 마시는 날은 일년에 한두 번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20일 동안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뭔가 답답한 느낌이 드는 게 웃기는 감정이다. 남편이 한약 먹을때도 내내 술을 먹고 다녀서 속을 썩이던 생각이 난다. 그래, 20일을 금주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 며칠 안 남았다.

올 추석은

아버님의 노발대발로 시작했다. 큰어머니가 편찮으시고, 작은어머니는 다리를 깁스하셨단다. 그래서 올해는 각자 집에서 지내자는 의견을 작은아버님이 내셨다. 우환이 있으면 제사나 차례를 지내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잊으셨는지, 내가 동서와 며느리를 데리고 큰집에 가서 일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신다. 일 할 수 있는 것도 축복이라시며. 내참~ 주인이 아픈 집에가서 무슨 일을... 작은 아버님이 오셔서 형님에게 읍소하고, 앞으로 설날은 우리집에서 차례를 지내는 것으로 마음을 누그러뜨리셨다. 해마다 명절 다음날 친정에 가기때문에 조카들이 이틀을 오고, 올케언니는 음식을 다시 장만했다. 국이라도 새로 끓이고, 몇가지 찬을 새로했었다. 참 미안한 노릇이었다. 그래서 올해는 내친 김에 나도 추석날 점심 차려드리고, 친정..

어이없는 일

병원주차장에 들어갔다. 앞서 가던 차가 후진을 하다가 내 차를 쿵 들이받았다. 남자가 내리더니 자기의 주차를 방해했다며 씩씩댄다. 같이 탄 여자가 나와서 미안하다고 한다. 남자한테 당신이 잘못한 것이라며 나무란다. 그제서야 내려서 보니 앞범버가 긁혔다. 워낙 차를 함부로 타는지라 그것이 지금 난 상처인지 아닌지 분명하지 않다. 사람이 다친 것도 아니고, 차가 많이 부서진 것도 아닌데, 그냥 미안하다고 하면 될 일인데 왜 그러냐고, 왜 다짜고짜로 책임전가를 시켜며 화를 내느냐고요. 그 남자, 당황해서 그랬단다. 참 쪼잔해진 남자다. 부끄러움을 알기는 할까. 이 시대는 남자를 장부로 두지 못했다. 이 지경이 되었으니 남자를 측은지심 없이 어찌 바라보겠는가. ㅠㅠ

카미고 데 산티아고

구 언니와 인연이 18년이 되었다. 10년 위인 언니를 바라보며 참 곱다, 늘 이런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어제도 변함없이. 남편의 말에 상처입는 여린 심성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여전하다. 자신을 잘 가꾸고, 기품있게 이울어가는 언니의 속은 사실 상처투성이다. 그러나 그 속을 아는 단 한 사람을 하느님이라고 믿는단다. 그것이 위로가 되고 다시 힘이 된다고. 남편과 아들 며느리가 몰라줘도 두 딸이 알아주고 하느님이 알아주지 않겠느냐고 스스로 일어선다. 앞으로 10년 이상은 살고 싶지 않다는 말에 나도 동감이다. 그 말에 이어 산티아고를 다녀온 친구는 길에 끝이 있고, 삶에 죽음이 있어 얼마나 다행이냐는 것이다. 지금 죽어도 아무 아쉬움이 없다고. 아, 그건 내가 오래전부터 하던 말이다. 아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