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사람이랑 899

시월의 마지막 주말

자의 보다 타의로 가을을 흠뻑 느끼고 있다. 모처럼 한가로운 주말을 보냈다. 아이들이 오지 않고, 경조사가 없는 주말, 참으로 오랜만이다. 시누이가 남편친구 부인들과 여행을 갔다. 나이 차이 많은 남편 친구 부인들도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보면 친구처럼 친근하다. 배려와 염치가 많은 시누이의 성격이 사람을 끄는데 한몫 한다. 오래된 문우들도 정이 쌓였다. 살아온 세월이나 환경의 차이 같은 건 별 문제가 안 된다. 같은 것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눈높이가 같다고 해야 하나. 우리끼리는 자신의 색깔이 뚜렷하나 밖에서 보면 확실한 공통분모가 있다. 끈끈함 보다 쌈박한 정(?)이랄까. 아, 후배의 딸이 고시 2차에 합격했다. 우리 아들이 도중 하차한 사법고시. 내가 왜 눈물나게 기뻤는지. 참 기특하다. 이쁜 딸. 아..

카미노 데 산티아고

친구 작업실에 갔다. 그림들이 형태를 감추고 거의 추상으로 가 있다. 색상도 환해졌다. 그림이 확 바뀌었다. 끈임없는 새로운 시도가 신선하다. 컴 앞으로 이끌어 CD를 보여준다. 지인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사진이다. 산티아고 성당을 시작으로 아름다운 길들이 펼쳐진다. 중간에 순례자의 무덤도 여럿 보인다. 꿈결같은 사진들이다. 깊숙이 숨었던 무언가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친구는 9월부터 스페인어를 배운단다. 체력단련으로 벌써부터 새벽에 1시간 반씩 걷는단다. 허리보강을 위해 주 2회 필라텍스는 오래전부터 하고 있다. 내년 1월에 외할머니가 될 준비, 이건 기다리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 후 일이 생각보다 무진장 많다. 3월에 개인전 준비, 큰 작품은 거의 완성된 듯 하다. 그리고 5월에 산티아고로 한..

열흘만에 떠난 안경

점심 먹은 식당에서 안경을 벗은 기억이 있는데 그 후 안경이 사라졌다. 화면이 크다고 새로 장만한 겔럭시폰 조차도 안보여서 부랴부랴 다초점 안경을 맞춘 것이 열흘 전이다. 아직 울렁울렁 적응이 안된 상태다. 정들기 전에 잃어버린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하는지. 할머니가 되었으니 잔글씨가 안보이는 건 순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돋보기를 아랫부분에 넣은 이 안경은 눈동자를 잘 조절해야 한다. 글씨를 볼 때는 눈동자를 내리깔아야 한다. 고개까지 숙이면 아랫부분에 깔린 돋보기가 기능을 못한다. 대신 계단을 오르거나 내려갈때는 고개를 완전히 숙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계단이 갑자기 올라온 듯해서 발을 헛디딜 수도 있다. 일주일 정도 쓰고 생활하면 적응한다고 했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낮은 코를 누르는 무게감과 귓뒤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