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사람이랑 902

오빠, 미안해요

요양원에 있던 큰오빠가 떠났다. 이 더위 끝나면 한번 찾아보리라 마음 먹고 있었는데... 죽음에 이른 시간은 급박했다. 심장마비다. 마침 방학이라서 멀리 있던 손자, 손녀. 아들 셋, 모두 임종을 보았다. 우리는 우리 마음 편한대로 오빠가 고통없이 갔다고 안도하며 자주 못보던 친척들을 만나 한편으론 축제 같은 첫 날을 지냈다. 옛이야기 하면서 잠깐씩 웃기도 하면서. 어제, 입관 예절에 막내 중딩 손자까지 모두 참석했다.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내가 서른이 넘었는데도 오빠들이 나를 입관에 참석시키지 않았다. 오빠들한테 나는 여전히 막내였기때문에 충격받을까봐 그랬단다. 나 역시도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인 것을 보면 그때까지도 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컸나보다. 할아버지의 임종을 접하고, 입관까지 바..

준비하라

큰 이별을 앞두고 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듯 하다. 그의 생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린다. 한번도 흐트러저 본 적 없는 생, 한번도 말랑말랑해 본 적 없는, 반듯하고 꼿꼿한, 한때는 그런 모습을 존경하고 좋아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정말 훨훨 벗고 자유롭게 살았다면 이렇게 가슴 쓰리지 않을 것을. 야망 / 성민호 사랑도 부질없어 미움도 부질없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버려 성냄도 벗어 버려 하늘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버려라 훨훨 벗어라 훨훨 사랑도 훨훨 미움도 훨훨 버려라 훨훨 벗어라 훨훨 탐욕도 훨훨 성냄도 훨훨 훨훨 훨훨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

옥수수 180개

우씨~ 옥수수를 90개 시켰는데 180개가 왔다. 택배 착오라나... 그냥 먹으라 해도 부담스러운데 돈까지 또 내란다. 겨우 택배비 깍아주면서. 우짜겠나. 운전 안하는 냄편 뫼시러 온 친구한테 한 박스 앵기고, 껍질을 까면서 보니 껍질째 주는 건 실례다. 냄편이 10개 정도 까고는 못하겠단다. 껍질까는데 온몸이 뒤틀린다. 껍질깐 것으로다 나누기도 하고, 쪄서 나누기도 해서 절반은 풀고, 옥수수를 유난히 좋아하는 어머니와 친구를 위해서 냉동실에 차곡차곡 쟁여 놓았다. 한 박스 분량을 담아 들고 친구 없는 작업실에 가서 그곳 냉동실에 넣어 놓았다. 마당에 한창 열린 블루베리를 따먹고, 상추, 쑥갓도 따고, 연한 당귀잎도 땄다. 아랫마당에 흐드러진 도라지꽃도 뚝뚝 한웅큼 꺾었다. 무릎수술하고 있는 다른 친구네..

미친~~

다 저녁에 문득, 시어골 친구에게 갔다. 마당에 심어놓은 갖가지 채소로 만든 셀러드, 그 위에 당귀꽃을 뿌렸다. 독특한 향에 먼저 취했다. 나를 위해 매콤하게 만들었단다. 약콩이 절반인 밥, 앙증맞은 모양새에 톡톡 터지는 것이 구수하기까지 하다. 러시아식 토마토 스튜는 처음엔 밍밍했는데 먹을수록 깊은 맛이 난다. 빗방울이 깃드는 한밤에 꽃들이 지천인 마당에서 먹은 저녁은 환상, 그 자체다. 마당 가운데는 키 큰 노란 백합이 그 진한 향으로 압도하고, 식탁 앞에는 꽃을 떨군 매발톱꽃이 씨앗주머니를 여물게 매달고 있다. 상추, 쑥갓, 샐러리, 고추, 호박, 토마토, 먹거리가 한켠에 있고, 납작 엎드린 아주가는 준비 자세다. 장미, 으아리, 산수국이 한창 이쁘다. 음전하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제맘대로 밝아..

찔레꽃 울타리

아침 일찍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전시회 기간중에 못 봐준 꽃들이 난리가 났다고, 어서 봐줘야 한다고. 부랴부랴 점심 준비를 해놓고 나갔다. 찔레꽃과 줄장미가 팬스를 넘어 난리부르스다. 은은한 찔레향에 취한다. 마당에서 점심을 먹고, 과제물이 밀려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물을 뿌리며 놀았다. 앞마당엔 압화를 많이 했던 수레국화와 개양귀비 흐드러지고, 꽃, 꽃들 함박웃음 요란하다. 작년에 뒷마당에 지천이던 개양귀비 씨앗이 날아가서 보도불럭 사이에 꽃을 피웠다. 낭창낭창 흔들리며 피는꽃이 너니? 아랫마당에 당귀꽃 피었다. 당귀꽃을 보면 '장한 꽃' 이 생각난다. 당귀향에 온몸이 나른해진다. 취나물도 뜯고, 머윗잎도 따고, 진한 햇살에 늘어져 있는 상추, 쑥갓, 케일, 셀러리, 그늘 지고나서 물을 주니 다시 고개..

하늘을 보다

친구 작업실 뒷마당에 누워 하늘을 보다. 부신 눈을 우산으로 가리고, 진한 햇살에 아랫도리가 따끈하다. . 새소리 들려오고, 찔래꽃 향기 그윽하다. 눈을 낮춰서 바라보니 튤립도 저리 커보이네. 찻잔도 커보이고.. 내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 어제 읽은 구절이 생각난다. '아름다운 얼굴이 추천장이라면 아름다운 마음은 신용장이라고... ' 그누무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모든 예술의 추구하는 바라고 하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을 능가할 것이 있겠는가. 잠깐씩 누리는 이런 시간으로 인해, 나는 내 삶을 견뎌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차이코프스키 이태리 기상곡 Op.45 누워서 듣는 기상곡, 예의가 아닌가 ㅋㅋ 아무려나 즐겨주는 게 어딘가. 남국의 밝은 피가 용솟음치는 듯 하다가 ...... 숙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