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사람이랑 899

꼬마스쿨

새해부터 16개월짜리 아기를 꼬마스쿨에 보낸다. 스쿨이라니, 기저귀 찬 아기를. 요일별로 가베학습, 체육교사, 미술선생, MYC뮤직, 뮤지컬 English 선생이 와서 돌아가며 논단다. 2세 반은 아이 둘에 보듁교사가 한 명이란다. 기저귀도 갈아주고, 점심 먹이고, 간식도 주고. 확실하게 노는 학습이 시작됐다. 내 일이 절반으로 줄었다. 그런데 왜 짠한 마음이 드는지. 아이한테 좋은 일이라는데. 아직도 아기는 엄마 손에서 커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24시간 가족들 하고만 있는 것 보다 교육적으로 좋은 것이라는데. 오늘이 3일째인데 벌써 적응을 하는건지 녀석이 활짝 웃으며 온다. 아침엔 울면서 떨어졌는데... 에고~ 참 좋은 세상(?) 맞나.

룰루랄라~

새해 첫날 '아바타'를 봤다. 아들이 예매해 놓아서. 이런 날은 늘 손님치닥거리하느라 바쁜날이 아니던가. 딸도 사위가 와서 혼자 계신 시아버지 연구소에 갔다. 이틀동안 해방된 시간이다. 3시간 짜리 영화는 30분 정도로 느껴졌다. 인간이 꿈꾸는 미래는 참담했다. 지구를 오염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에너지를 얻기위해 다른 행성을 침략하고, 파괴한다. 이 영화를 위해 12년을 준비했다는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성찰이 담겨있다. 예전에 '터미네이터'도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지 않았는가. 에너지는 아껴서 쓸만큼 쓰고 자연으로 돌려주어야 하는, 기본 상식이 안통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결과를 보여준다. 동화적 상상력으로 펼쳐지는 환상은 볼거리를 충족시켜준다. 꿈의 동산같은 판도라 행성, 나비족들이 꼬리로 다른 생명체..

일 년에 한 번 가는 그곳,

송년모임에 못 나갔는데, 모두 헤어지고 내가 나올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몇몇 의리맨들 때문에 저녁을 차려드리고 나갔다. 태경이 눈을 속이고. (내가 지 엄마인줄 아는지 나만 나가면 녀석이 운다) 반가운 얼굴들과 주인이 추천하는 안주에 소주, 맥주를 마시고, 2차는 라이브카페에 갔다. 70,80 이라나, 첨 간 곳이다. 손님이 없어 썰렁하고, 시원찮은 가수를 제치고 후배가 '연극이 끝난 후'를 멋지게 불렀다. 양주 한 병을 비우고 연례행사로 가는 나이트클럽엘 갔다. 그야말로 돋대기시장같은 분위기다. 음악은 고막을 위협하고, 그곳에서 대화라는 건 불가능하다. 이미 전주가 있었던 일행은 아마도 나보다 더 취한 상태일 것이다. 올해는 취하지 못하고 넘어가는가 했다. 광란까지는 아니라도 알딸딸 취해서 귀가 얼얼한 소..

나, 중심

어르신이 전화를 했다. 얼굴 보여야 할 행사에 얼굴을 못 봤다며 무슨 일이 있느냐고. 외할머니가 되느라 그랬다니까 한~참 설교를 하신다. 사랑에 절제가 필요하며, 특히 자식에 대해서 맹목적인 우리나라 여자들이 경계해야할 것이 자식사랑에 대한 절제라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고. 몇 달 외국에 다녀올 것이라며 다녀와서 만나자고. 해줄 말씀이 많으시단다. 할머니 노릇때문에 이 한 달, 내 생활이 엉망이 된 건 사실이다. 더우기 연말이라 꼭 참석해야할 행사가 많았다. 딸은 놀이방이나 도우미를 불러놓고 나가라고 했지만 모두 포기했다. 나 없이도 행사는 잘 치루어졌지만, 우리 집에서는 지금 내 충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이다. 이렇게 내 노동력을 확실하게 필요로 하는 시간이 앞으로 많지는..

인권분만

딸이 어제 새벽 2시반에 나를 깨워서 3시에 병원 도착, 3시 25분에 분만을 했다. 그야말로 순산이다. 아기가 세상에 나와서 바로 엄마 가슴 위에 뉘인다. 엄마의 심장소리를 듣게 한다. 탯줄을 아빠가 자르게 하는데, 사위가 일주일 대기하고 있다가 일본으로 간 다음날이라서 내가 그 역할을 했다. 탯줄을 자르고 양수와 같은 온도의 물에 담근다. 가능한 한 흐린 조명에 은은한 음악이 흐른다. 다시 엄마 가슴 위에서 아기는 눈도 뜨고 젖을 문다. 한참 있다가 따뜻한 강보에 싸여 목욕을 하러 간다. 태아의 인권을 배려하는 분만의 방법이란다. 태아부터 한 인간으로 취급하는 우리의 사고와 맞는 발상이다. 예전에는 아기를 낳으면 거꾸로 발을 잡고 엉덩이를 때려서 울음소리를 들었다. 이것이 막 세상에 나온 생명에게 엄..

동백

친구 생일이라서 순성원에서 만났다. 동백이 피었다. 미혼으로 저물어 가는 친구를 보는 건 안쓰럽다. 젊을 때는 자유로움을 부러워했건만, 이제는 내가 챙겨주어야 할 혈육같은 느낌이 든다. 화려한 일본 동백보다 난 조촐한 토종 동백이 좋다. 꽃이 질때 단숨에 탁, 목을 꺽는 성질머리도 좋다. 노아시 라나, 일본산 감나무도 가을이 깊었다. 이파리를 다 떨구고 감을 익히고 있다. 까치밥도 필요없는데 ... 순성원엔 눈요깃거리가 많다. 추석에 내게 준 사과나무를 죽이기 전에 도로 갖다 주었다. 난 뭐든 죽이길 잘 한다. 내 손길을 주어야 자라는 것들은 부담스럽다.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을 지속적으로 받아야만 사는 생명들... 에고... 불쌍타. 재미로 듣는 현대소설론의 마지막 과제가 '쓰고싶은 것 쓰기' 다. 과연..

묘지의 가을

지인의 결혼식이 끝나고 후배가 낙엽 밟으러 가자한다. 후배가 자주 오는 곳이라고 한다. 자작나무가 구차하게 서있다. 북구에서 숲으로 보던 나무라서 이렇게 몇 그루 서 있는 것을 보면 영 안쓰럽다. 저 벗은 몸도 추워보이고.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무덤의 모습이다. 아무런 치장 없는, 저 둥근 선이 엄마의 젖무덤 같다. 그 위에 살픈 얹힌 단풍이 그만이다. 올려다본 단풍은 가을내를 물씬 풍긴다. 아주 좋은 자리에 널찍하게 자리 잡은 묘지 앞에 붙여진 팻말이다. 자손이 외국으로 갔거나... 관리가 되지 않은 호화분묘(?) 앞에서 많은 생각이 오고간다. 나는 내게 침 뱉을 무덤은 남기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난 이미 갈 자리가 정해 있으니까. 무덤을 둘러싼 잔디 뒤로 늘푸른나무가 생경스럽다. 제각각의 색으로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