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이 전화를 했다.
얼굴 보여야 할 행사에 얼굴을 못 봤다며 무슨 일이 있느냐고.
외할머니가 되느라 그랬다니까 한~참 설교를 하신다. 사랑에 절제가 필요하며, 특히 자식에 대해서 맹목적인 우리나라 여자들이 경계해야할 것이 자식사랑에 대한 절제라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고. 몇 달 외국에 다녀올 것이라며 다녀와서 만나자고. 해줄 말씀이 많으시단다.
할머니 노릇때문에 이 한 달, 내 생활이 엉망이 된 건 사실이다. 더우기 연말이라 꼭 참석해야할 행사가 많았다. 딸은 놀이방이나 도우미를 불러놓고 나가라고 했지만 모두 포기했다.
나 없이도 행사는 잘 치루어졌지만, 우리 집에서는 지금 내 충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이다. 이렇게 내 노동력을 확실하게 필요로 하는 시간이 앞으로 많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15개월 아기를 보고, 어른들 세 끼 밥을 차리고...그 와중에도 호시탐탐 책을 읽고, 원고도 마감 맞춰 내고, 이렇게 블러그질도 하고 ... 이러니 내 스스로 자뻑할 일이 아닌가.
내가 얼마나 영악하게 '나' 중심으로 살아온 것을 그 어른은 모르시나 보다.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밖에 나가지 않고도 할 일이 많다는 거, 이것도 좋은 일이다.
시간을 더 알차게 보낼 수 있기도 하다. 내가 나를 들여다보기 좋은 시간이다.
가끔 왕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그 순간을 돌이켜 보면 그건 누군가에게 기대를 하는 순간이다.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말자.
오로지 '나'만을 믿자.
이 불온한 시작에서 상상력이 마구마구 출동해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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