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사람이랑 905

오해

친구들이 모두 내가 엄청 바쁘다고 생각해서 나를 부르지 않는다. 가까이 와서 전화를 하면서도 몹시 미안해 한다. 그러고 보니 친구 모임을 거의 내가 주도를 했다. 내가 가능한 시간에 소집을 하는 격이다. 낮에 분당에 왔다는데 저녁에 불러서 운동을 제치고 저녁을 함께 먹었다. 친구는 5년간 치매 어머니를 돌봤는데 지난 달에 돌아가셨다. 늙고 병든 엄마는 미혼인 착한 딸 몫이다. 엄마 돌아가시고 한 달을 잤단다. 야무진 구석이라곤 없는 친구가 참 장한 일을 해냈다. 그간의 이야기를 오늘에야 들으니... 기가 막힌다. 좋은 죽음을 맞는 건 큰 축복이다. 염치없이 여기다 기대야 한다. 자주 바쁘긴 하지만 너무도 실속없는 일들이다. 인사치레로 행사에 얼굴 도장 찍으러 다니고, 예고 없는 손님치레 하는 게 요즘 일..

꽃, 지고 피다

올해 들어 네 번째 부고다. 모두 부모님 상이라서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후배는 엇그제 만났을 때 요양병원에 입원한 아버지가 오래 고생할까봐 걱정된다고 했는데... 한치 앞을 모르는 게 우리다. 결혼 날 받아 놓은 젊은이에게 덕담으로 "할아버지가 죽고, 아버지가 죽고, 아들이 죽고 손자가 죽는 삶이 되기를 " 이게 무슨 덕담이냐고 갸우뚱... 사실, 이것 보다 더 큰 복이 없다. 첫 봄기운을 느낀 날이다. 낮에 오우가 모임에 점심 먹고, 율동공원을 한바퀴 걸었다. 등에 내리는 햇살이 따듯하다. 다시 봄은 오는데..... 지는 꽃이 있어야 피는 꽃이 있겠지. 저녁에 문상 다녀오는 마음이 편안하다. 편안한 죽음, 차례에 많이 빗나가지 않는 죽음을 기대한다. 내게도 머지않아 찾아올 일이다.

양의 해

연휴 전날 친정을 다녀왔다. 친정은 여전하다. 명절 전전날이니 조용하다. 설 전날 아들 며느리가 와서 만두를 빚었다. 이번 설에는 전을 부치지 않으니 일이 없다. 일찍 끝나서 저녁 먹고 산책도 하고... 도토리묵을 쑤고, 셀러드와 버섯 로스. 더덕무침과 나박김치. 손만두 넣은 삼색 떡국, 동서가 잡채를 해 와서 상은 그런대로 그득하다. 올 설은 작은 집에 새댁이 둘 늘었다. 아직 여리여리 아기폼이지만... 다음부터는 기능 발휘하겠노라고. 큰댁에서도 손주들까지 모두 왔다. 설 다음 날은 딸네 식구와 조카딸 둘이 다녀가고... 육회 추가. 앞으로 이렇게 간단히 하리라. 점심 먹고 태경이 시경이와 사위와 탄천에 나갔다. 직장에서 인간관계가 힘들어 장염 걸렸다는 애기 들으니 짠하고.. 태경이 초딩이 되니 뿌듯하..

말 인심

지난 토욜 결혼한 조카가 신혼여행 다녀왔다고 오늘 인사를 왔다. 요즘은 예전보다 간편하고 느긋하게 손님을 치른다. 이번 설에는 전을 부치지 않으려고 마음 먹었다. 간편한 즉석 요리 몇 가지와 만두만 빗으려고 생각하니 가뿐하다. 금욜 어머니 생신을 치르고... 친구가 도토리묵과 더덕을 가져오고, 동서가 나물이랑 가래떡을 해 오고. 아들은 할머니 좋아하는 간장게장을 보내고, 생신도 가볍게 넘어갔다. "내가 오래 살아서 너를 힘들게 하는구나." "미안하고 고맙다. 너는 복받을 거다." "참 맛있다. 잘 먹었다." "네가 내 며느리 아니었으면 어쩔뻔 했나. 네 덕에 내가 오래 산다." "그만하고 쉬어라." 어머니의 립서비스가 나날이 찐해진다. 예전엔 꼿꼿하고 깔끔하시어... 뭔가 항상 불만이었는데... 말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