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2559

우히히

어머니 생신날이다. 한 달 전부터 '이번 생일은 아무것도 하지말고, 아무도 오지 말라'고 하셨다. 아플때는 안 챙기는 것이라면서. 일주일 간격으로 상기시켰다.ㅋㅋ 어제 일요일이라서 당겨서 손님 치르고, 오늘은 당일이니까 또 신경써서 차려드리고. 아무튼 잘 치뤘다. 이틀에 걸쳐. 어젠 동서가 고구마 홈케익을 사오고, 며느리가 생전 처음으로 케익을 만들었다고 가져왔는데, 모양은 그럴싸한테 맛이 자신없다며 아들이 요플레아이스크림케익을 사오고, 케익이 세 개였다. 줄줄이 세워놓고 촛불켜고. 흐믓한 표정의 어머니. 내참... 올해 행사가 다 지난 듯 하다. 아버님 생신은 한 끼는 외식을 하는데, 어머니 생신때는 항상 너무 추워서 집에서 치른다. 올해가 가장 따뜻한 날씨였다.

낯선 길에서 2010.02.09

산다는 것

딸의 시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일본에서 사위가 오고, 카나다에서 안사돈이 오고 있다. 지난 해 8월에 췌장암으로 한두 달 선고를 받았는데 6개월을 사신 것이다. 그 전까지는 펄펄하셨는데, 정말 노인의 기력은 믿을 게 못 되는가보다. 팔순이 넘었으니 할 일은 다 하신 것이지만, 이별은 애닯다. ... ... 오늘도 무사히 살아냈다. 내 몫의 시간을.

남자들에게 / 시오노 나나미

남자들에게 - 시오노 나나미 남편이든 애인이든 사랑하는 사람이 한번 병이 나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지 않아 본 여자는 여자도 아니다. 하지만 진짜 병이어서는 곤란하다. 생명에 지장이 있는 병으로는 이야기가 심각해지니 정말로 바라서는 안되겠지. 감기나 골절쯤으로 해두자. 왜 병이 나 주었으면 하느냐 하면, 병이 나서 침대에서 일어나 앉지 못할 상태가 되어야 겨우 여자는 남자를 독점할 수 있으니까. 남자란 요상한 동물로 능력 있는 남자란 것과 바쁘다라는 것을 정비례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는 그렇지만은 않다고 확신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바쁘면 바쁠수록 자기가 무슨 ‘대단한’ 남자인 줄 알고, 또 그런 모습을 여자에게 과시하려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런 남자들은 시간을 내는 것이야말로, 특히 사랑하는..

놀자, 책이랑 2010.01.29

여자의 풍경, 시간의 풍경 / 김훈

여자의 풍경, 시간의 풍경 ― 김 훈 전군가도/사이판 사쿠라꽃 피면 여자 생각난다. 이것은 불가피하다. 사쿠라꽃 피면 여자 생각에 쩔쩔맨다. 어느 해 4월 벚꽃 핀 전군가도全郡街道 (전주-군산 도로)를 자전거로 달리다가, 꽃잎 쏟아져 내리는 벚나무 둥치 밑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나는 내 열려지는 관능에 진저리를 치면서 길가 나무둥치에 기대앉아 있었다. 나는 내 몸을 아주 작게 옹크리고 쩔쩔매었다. 온 천지에 꽃잎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나무둥치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바라보면, 만경 평야의 넓은 들판과 집들과 인간의 수고로운 노동이 쏟아져 내리는 꽃잎 사이로 점점이 흩어져 아득히 소멸되어 가고, 삶과 세계의 윤곽은 흔들리면서 풀어지면서, 박모의 산등성이처럼 지워져 가는 것이었는데, 세상의 흔적들이 지워..

놀자, 책이랑 2010.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