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단순한 열정 / 아니 에르노

칠부능선 2022. 10. 18. 21:14

1940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소도시에서 태어났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말한다.

1991년 발표한 <단순한 열정>은 러시아 외교관인 연하의 유부남 A와 사랑을 다룬다. 사랑이라기보다 오직 내 관점에서 피력한 기다림과 조바심의 기록이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라는, 그래서 그때의 나를 객관화시켰다.

치명적인 열정을 진단한 아니 에르노의 대표작 -

'사적인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억압을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을 통해 탐구한 작가' -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이 책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아, 그의 애인이 된 그녀보다 33세 연하인 필립 빌랭이라는 청년이

그녀와의 5년간의 사랑을 <단순한 열정>의 문체까지 거의 그대로 옮겨 <포옹>이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마그리트 뒤라스 66세, 얀 앙드레이 27세때 만나.... 마그리트 뒤라스가 82세로 사망할 때까지 곁을 지킨 얀이 떠오른다.)

*가끔, 이러한 열정을 누리는 일은 한 권의 책을 써내는 것과 똑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면 하나하나를 완성해야 하는 필요성, 세세한 것까지 정성을 다한다는 점이 그랬다. 그리고 몇 달에 걸쳐서 글을 완성한 후에는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이 열정이 끝까지 다하고 나면 - '다하다'라는 표현에 정확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겠다. - 죽게 되더라도 상관없을 것만 같았다.

(20쪽)

* 주말이면 나는 일부러 집안 청소나 정원 손질 같은 고된 육체노동에 매달렸다. 저녁이 되면 나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A가 내 집에서 오후를 지내고 갔을 때처럼 사지가 마비되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타인의 육체에 대한 기억이 없는,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공허한 피로감이었다. (51쪽)

* 그 사람은 " 당신, 나에 대해 책을 쓰진 않겠지" 하고 말했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 사람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며, 또 그 사람이 읽으라고 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이 글은 그 사람이 내게 준 무엇을 드러내 보인 것 뿐이다.

어렸을 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67쪽)

'놀자, 책이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 철학 • 수필 / 철수회 4집  (0) 2022.10.21
부끄러움 / 아니 에르노  (0) 2022.10.18
모비딕 / 허먼 멜빌  (0) 2022.10.03
나태주 육필시화집  (0) 2022.09.24
잡문집 / 무라카미 하루키  (0) 2022.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