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인간 철학 • 수필 / 철수회 4집

칠부능선 2022. 10. 21. 20:04

"이번 제 4집의 공동 주제는 '아름다움'이다. 진리는 왜 아름다운가, 아름다움의 본질은 무엇인가, 아름다움은 어디서 오는가?"

맹난자 선생님이 쓴 <책을 내며> 서두부터 자세를 바로 세운다.

'아름다움보다 진리를 더 사모하는 예술가는 아직 예술의 지성소에 이르지 못한 자' 라고 주장한 오스카 와일드를 만나고 니체와 성서, 보르헤스, 노자, 공자와 데미안... 덕분에 많은 철학자를 만났다.

노작勞作을 공부 모드로 주욱 읽었다. 감사하며.

 

* 중세에는 종교적 가치가 다른 가치들을 너무 압도하여 그 시대를 역사가들은 '암흑시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현대는 과학주의와 쾌락주의가 너무 팽배하여 또 하나의 암흑시대를 연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시대를 계몽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자의식을 지니고 가치의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 심미적 가치의 중요성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그것은 사물을 논리적으로 형식화하지 않고 욕망의 눈으로 일그러뜨리지도 않은 채 그 본질에 직접 닿게 함으로써 가치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24쪽)

 

* 이송 차량을 따라가면서 75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영화 <플랜 75>를 떠올렸다.

고령화가 일으킨 사회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75세 이상 국민이라면 누구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법이 국회를 통과한다. 그 제도의 이름은 '플랜 75', 일본은 2025년이면 국민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75세 이상인 후기고령자 사회가 된다고 한다.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한 일본이 한국전쟁을 기회로 부흥의 시동을 켜고 덩달아 출생률도 높아진 게 1950년부터였고, 그때 태어난 이들이 75세가 되는 때가 2025년이다. (37쪽)

 

 

​* 모네갈의 지적처럼 어쩌면 보르헤스의 글쓰기는 창작이 아닌 '개작改作', 창조가 아닌 '반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우주는 신이 쓴 하나의 거대한 책', 세계를 한 권의 책으로 본 보르헤스는 "그 책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썼다가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쓴, 문학이란 일종의 양피지사본이 아니냐."고 묻던 그의 물음 앞에 다시 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 강의》(1976년刊) 곳곳에서 불교학자 파울 도이센, 스즈키 다이세츠, 상카라 등의 말을 인용하며 " 세상은 환幻이고 산다는 것은 바로 꿈꾸는 것"이라고, 그리고 인간을 통해 드러나는 환을 추적하면서 문학의 본질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묻는 그에게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는 바이다. (64쪽)

 

 

* 여행을 좋아하는 몽테뉴에게 친구가 물었다.

" 이런 나이에 길을 떠났다가 그 먼길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려고?"

" 무슨 상관이 있나? 나는 여행에서 돌아오거나 여행을 완수하려고 떠나려는 것이 아니다."

몽테뉴의 여행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에게 둘러싸여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더 좋다고 했다. 몽테뉴는 길이 길을 이끄는 대로 바람처럼 다니는 여행을 즐겼기에 집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여행의 종착지는 우리 집이다. (93쪽)

 

* 셀프 카메라로 찍은 내 얼굴은 물결이 일지 않는 대리석 바다 같다. 셀카는 개체성을 상실한 스투디움 인간을 빚어낸다. 내 얼굴에서 혈족의 흔적이나 세월의 굴곡선을 찾아볼 수 없다. 얼굴에 쓴 디지털 가면으로 나만의 세포조직과 혈색이 자취를 감추었다. 설핏보면 젊고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매끄럽게 눈속임을 한 광대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첨단 네트워크는 나와 타자를 연결하여 한 거푸집에서 아름다움을 똑같게 찍어낸다. ... 나는 내 얼굴을 상실한 호모 돌로리스다. (167쪽)

 

* 겸손이 그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디게 해 준 버팀목이었으며, 향후 그의 새로운 시작점이 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미국 공항 세관에서 "신고할 것은 나의 천재성뿐"이라 했던 그의 오만함으로 보면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쾌락만을 좇으며 살아왔던 그에게 슬픔과 고통은 새로운 세상을 가르쳐 주었다. 고통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지고한 감정이며 모든 위대한 예술의 전형이자 시금석임을 알게 되었다. 고통이 있는 곳에 성소가 있었던 것이다. (191쪽)

 

*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 파도가 흔들어도 / 그대로 잔다."

같이 먹는데 마주 앉은 섬이 먼저 취한다. 태양이 머리 위에서 비켜나면서 바다도 취하는지 재잘거림이 잦아든다. 내 안의 절망도 그리움도 바다에 눕는다. 고요하다. 바다의 정적이 주는 눈부신 외로움이다. 외롭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성산포에서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기, 후회하지 않기, 서두르지 않기, 하고 싶은 대로 하기, 가벼워지기. (234쪽)

 

* 《논어》 일독을 마친다. 현대의 명쾌한 인문학 서적들을 읽을 때와 달랐다. 천천히 곱씹으며 몸으로 전해 오는 신앙 같은 긍정을 경험했다. '배운다 學'는 것은 일가견을,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깨어 있는 자기 훈련'을 의미했다.

인에 대하여 제자가 물을 때 "모르겠다"고 말한 공자님의 대답은 무관심이 아니라 사람의 정신 안에서 움직이는 생명의 활동성에 대한 유보적 판단이 아니었을까. 인가은 우주의 축소판이다. 공간적 의미로는 축소지만 자아의식의 실존적 추구성에서는 우주를 능가할 것만 같다. (2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