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서행구간에 들어왔습니다 / 주안 외 7명

칠부능선 2022. 11. 5. 08:46

퇴촌 동네책방 <서행구간> 팀의 첫 동인지가 나왔다.

지난 여름에 만난 여덟명의 모습과 사연이 눈에 선하다.

글을 읽으며 울고, 들으며 울었던 진한 감동의 시간이었다.

경기콘텐츠진흥원 '글쓰기창작소' 사업의 지원을 받아 만들었다니 더욱 장하다.

주안 쥔장님은 계간현대수필 가을호로 등단한 열혈 작가다.

동네에 이렇게 따뜻한 만남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나를 풀어놓고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어나가는 모습이 훤히 그려진다.

거듭 박수를 보낸다.

서행을 마친 이들의 마음을 본다.

주안 - 어느 날 삶의 속도와 방향을 잃고 서행구간에 들어 온 사람들, 우리의 인연이 소중한 것은 나 역시 그 서늘한 시간을 건너 온 까닭이다. 시간과 마음을 헐어 쫒아가던 것에서 자유하고 싶었고, 세상이 만든 속도에서 내려오고 싶었다. ... 부디, 자기만의 답을 놓치지 말고 정주행 하다가 언제라도 힘이 들면 서행구간으로 들어와 주길 바란다. (208쪽)

혜준 - 15살

나의 서행은 마음의 키가 자라는 것이다. 내가 처한 환경을 탓하고 불평쟁이가 되기 싫다.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내가 다르듯, 서행구간에서 보낸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마음가짐은 달라졌다. ... 혼자의 시간을 즐기는 재미도 알았다. ... 나는 서행구간의 매력을 알았기 때문이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성장해야 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천천히 가더라도 제대로 가는 멋있는 내가 되고 싶다.

서원 - 느린 삶은 결코 뒤처짐이 아니었다. 낭떠러지로 달려가는 나를 붙잡는 손이었다. ... 우리는 오래 전부터 함께 가고 있었다.

현정 - 서행하면서 마음이 단단해짐을 느꼈다. 어떤 길 위에서도 잘 지낼 거라는 믿음을 갖게 했다.

현재 - 묶였던 닻을 풀고 다시 항해를 시작한다. 힘껏 노를 저으며 수평선으로 향한다. 가끔 거센 파도에 휘청이겠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면 된다.

지수 - 다시 나아가야 한다. 한 번도 흐트러진 적 없었던 것처럼 매무새를 만진다. 말馬과 사람을 만나러 간다. 뜨거운지 알아도 손대야 하고 차가운지 알아도 부딪혀야 한다.

향옥 - 이제는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다. 조만간 내 고향 포항도 혼자 가볼 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한 일이다. 이제야 알게 된 삶의 순리는 빠름이 아니라 느림에 있었다.

나연 - '급하지 않아도 된다. 잠시 쉬어도 아무 문제없다'는 문장이 인식이 아닌 이해가 되자 비로소 쳇바퀴 같은 삶의 굴레를 멈출 수 있었다. 서행은 나에게 충만한 삶을 살게 했고, 행복의 의미를 알게 했다.

(213쪽)

이런 정성과 센스라니~

작은 노트와 서행구간 그림카드가 있다. 보라, 온통 황홀색이다.

​주안 님이 보내온 ~

<표4>

어둔 마음을 열고 서행구간에 들어왔다.

10대부터 50대까지 눈 밝은 여덟 사람이 속도를 버리고 서행구간에 들어왔다.

이들이 찾은 ‘나’는 심히 진솔해서 목울대가 뻐근해지며 눈물바람을 불러올 수도 있다.

묶였던 속내를 풀어내며 스스로 답을 얻어 알차게 영글었다.

결핍과 상처는 문학의 거름이다. 척박한 땅에 거름기운으로 장미, 백합, 야생화를 피웠다.

그 향기로운 서정과 아픈 서사는 돌부리에 채인 내 멍울까지 풀어준다.

이내 벌 나비 어우러져 풍경을 완성할 게다.

모두의 쉼터와 숨터인 ‘서행구간’에서 저마다의 모양과 빛깔로 화답한 꽃송이들 미덥고 귀하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 부르며 박수를 보낸다.

노정숙 (시인,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