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모든 그림자에는 상처가 있다 / 최연숙

칠부능선 2022. 10. 30. 23:14

11시에 우리집에서 심샘과 혜민씨와 버스로 인사동에 갔다.

혜민씨는 일찌감치 친정 오듯이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호박, 사과, 꽃차, 아로니아 ...

좋은 소식이 있어서 참 좋다. 기쁜 결실로 이어지길 빈다.

최연숙 시인의 새 시집 출판기념 모임이 인사동 산유화에서 있었다.

시인회의 식구들이 모였다.

여전히 맹렬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최시인의 웃음소리가 귀에 가득하다.

시와 함께 밝고 환하게 오래 행복하길...

시인회의 이 팀의 오래 전 사진을 누가 톡으로 올렸다. 아마도 15년은 된 듯한 사진.

저 때는 모두 젊었네. 그래도 나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작가의 말

지상에는 풀벌레의 가을哥 천상에는 은하수의 별똥雨 허공이 만지는 밤의 등骨 퍼낼수록 갈증이 짙은 詩의 물고랑 언제나 흡족히 마셔볼까요.

2022년 가을 최연숙

최연숙 시인은 ‘기억의 최면술사’이다. 그는 최면술사답게 기억을 퍼 올리는 데 익숙하다. 그렇게 떠올린 기억은 실제보다도 선명하고 섬세하다. 나아가 그 대상의 내면까지를 깊이 파고들어 시적 실감을 증폭시킨다. 최면술사인 그가 재현한 기억의 영상들은 우리를 감동에 젖어 들게 하고, 가슴을 아리게 하고, 때론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 오봉옥 (시인,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

모든 그림자에는 상처가 살고 있다
최연숙

 


산책길에 줄지어 선 그림자
나무의 그림자를 관통해 제트기처럼
빠르게 지나간 고양이
나무는 옹이를 더 깊이 숨겼다
물리고 물려 곪은 데가 진득한 고양이도
호피 무늬 털만 보여줄 뿐이다
아픔은 아픔끼리 통하는지
바위는 어둠 속으로 깊어진 상처를
가끔 몸을 뒤틀며 보여주기도 했다
저 수억만 년 물의 역사로
석탑을 쌓은 주상절리의 조화도
물의 상처가 만들어 낸 비경이다
햇볕이나 달빛에 상처를 말리다가
밤이면 별의 그림자를 피워내기도 한
크고 작은 상처의 꽃들
꽃은 꽃끼리 부둥켜안기도 한다
꽃은 꽃끼리 밀어내기도 하다가
딱딱해진 딱지를 떼어내기도 하는데
꽃을 피우지 못한 상처는
다른 상처의 꽃을 보지 못한다
모든 그림자에는 상처가 살고 있다

 

 

 

죽은 새끼를 물고
최연숙

 


지중해 안탈리아 해변
뜨거운 모래밭에서 물개 한 마리
몇 시간째 울부짖는다
목은 쉬고 눈가에 눈물이 흥건히 젖은
어미 물개 앞에는
사산한 새끼가 널브러져 있다
어미는 새끼의 몸에 자꾸 얼굴을 갖다 댄다
급기야 물에 닿으면
혹 살아나지나 않을까 하고
새끼를 물고 물가로 간다
새끼가 미동도 보이지 않자
이번엔 죽은 새끼를 모래밭에 내려놓고서
바다를 막아 선다
죽은 새끼 앞에서
어찌 할 줄 모르는 에미의 마음
뉴스에서는 자식을 죽인 비정한
젊은 여자가 얼굴을 가리고 차에서 내린다

 

 

 

 

한옥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다시 시를 논하고~ 아니, 뒷담을 하고~ 

서현역에서 셋이서 걸어서 집에 왔다.

이제야 좀 속이 가벼워진 듯, 헤어짐이 아쉬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