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 선생이 건네준 책이다.
나태주 시인의 맑은 영혼이 새겨있다. 동심을 유지하는 건 큰 복이다.
내 감성이 얼마나 딱딱해져 있는지를 확인한 시간이다.
말랑말랑해지고 싶다.
간질간질한 마음을 살려내고 싶은 가을이다.
멀리서 빈다
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11월
나태주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겠습니다.
황홀극치
나태주
황홀, 눈부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함
좋아서 까무러칠 것만 같음
어쨋든 좋아서 죽겠음
해뜨는 것이 황홀이고
해 지는 것이 황홀이고
새 우는 것 꽃 피는 것 황홀이고
강물이 꼬리를 흔들며 바다에
이르는 것이 황홀이다
그렇지, 무엇보다
바다 울렁임, 일파만파, 그곳의 노을,
빠져 죽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황홀이다
아니다, 내 앞에
웃고 있는 네가 황홀, 황홀의 극치다
도대체 너는 어디서 온 거냐?
어떻게 온 거냐?
왜 온 거냐?
천 년 전 약속이나 이루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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