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잡문집 / 무라카미 하루키

칠부능선 2022. 9. 18. 19:32

 

오랜만에 하루키 책을 주문했다. 한때 열렬하게 읽었는데.

하루키 책은 모두 아들이 가져가서 집에 한 권도 없다. 

<잡문집> 그동안 여기저기서 청탁받고 쓴 글인데 책으로 묶을 때 빠진 글을 모았다.

그야말로 잡문이다. 책에 쓴 서문, 수상소감, 넘에게 써준 감상평, 넘의 그림전시 써준 글 등 참으로 다양하다.

싱겁기는 해도 아주 인간적이다. 그야말로 설렁설렁 읽으며 민낯의 하루키를 만난다.

인기작가, 대가?의 글은 버릴 게 없다. 다~~ 돈이 된다는 얘기다.

(박완서 선생 딸이 한 말이 떠오른다. 엄마는 돈 안되는 글은 안 쓴다고. 자식들한테 편지를 안 썼다는 이야기다.)

이 책도 2011년 11월 1쇄, 2022년 17쇄다. 여전히 많이 팔리고 있다.

하루키의 책은 세계 44개국에 번역되었고, 그는 본업은 소설을 쓰는 것이고, 부업으로 번역을 한다.

부업은 취미이자 즐거움이라고 한다. 레이먼드 카버 전집을 번역하고 쓴 글을 읽으니 카버의 소설을 더 읽고 싶어진다.

여전히 잘 읽히는 건 재즈리듬이 깔린 탓일까. 

 

 

 

* 가설의 행방을 경영하는 주체는 독자이지 작가가 아니다. 이야기는 바람과 같다. 흔들리는 것이 있어야 비로소 눈에 보인다.

(21쪽)

 

* "남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남과 다른 말로 이야기하라"라는 피츠제럴드의 문구만이 나의 유일한 버팀목이었지만, 그것이 그리 간단히 될 리는 없었다. 마흔 살이 되면 조금은 나은 글을 슬 수 있겠지, 라며 계속 썼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수상은 매우 끼쁘지만, 형태가 있는 것에만 연연하고 싶지 않고 또한 벌써 그럴 나이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63쪽)

 

* 가오리씨, 결혼 축하드립니다. 나도 한 번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는 나는 늘 뭔가 딴생각을 떠올리려합니다. 그렇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좋을 때가 많기를 기원합니다. 행복하세요. - 87쪽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딸 가오리양 결혼 축사 - 미국에서)

 

* 카버의 작품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여겨지는 점은 소설의 시점이 절대 '땅바닥' 높이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 없다. 무엇을 보든 무엇을 생각하든 일단은 맨 밑바닥까지 가서 지면의 확고함을 두 손으로 직접 확인하고, 그로부터 조금씩 시선을 위로 올린다. 무슨일이 있어도 절대 '잘난 척하는 소설'을 쓰지 않았다. 달변을 싫어하고, 요령을 싫어하고, 지름길을 싫어했다. 있는 것으로 대충 때우기를 철저하게 꺼렸다. 따라서 그가 쓰는 픽션은 대부분 '모조품'이 아니었고, 진정한 박진감을, 따뜻하고 깊은 마음과 폭넓게 확장되는 독자적인 풍경을 가졌다. (323쪽)

(레이먼드 카버 전집을 번역하고 쓴 글이다.)

 

* 나는 사 년 전에 《해변의 카프카》라는 장편소설을 프란츠 카프카에 대한 오마주로 썼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스스로를 카프카라 부르는 열다섯 살짜리 소년입니다. 좀전에 말씀드린 것과 같이 나는 그 나이에 처음으로 카프카의 작품을 읽었습니다. 집을 나온 카프카 소년은 새로운 세계에 홀로 발을 들여놓습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철저하게 카프카적인 세계이며, 거기에서 그가 품는 것은 분열된 감각입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 프란츠 카프카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이 편지는 1904년에 쓴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백이 년 전이군요.

"생각건대, 우리는 우리를 물어뜯거나 찌르는 책만 읽아야 한다.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여야만 한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쓰고자 하는 책의 일관된 정의가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458쪽)

(2006년 10월 30일 프라하에서 열린 '프란츠 카프카 국제문학상' 수상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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