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나쁜 시절 / 류근

칠부능선 2022. 3. 29. 22:17

나쁜 시절 

류근

 

 

 

10년씩 배경을 뛰어넘는 드라마처럼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으면 좋겠네

숙취에 떠밀려 간신히 눈을 떴을 때

한 국자 비워져 버린 간밤의 기억처럼

시간이 그렇게 큰 걸음으로

풍덩풍덩 달려가 줬으면 좋겠네

내게로 쏟아져 내리는 미분의 시간들

아침에서 저녁으로 이르는 길이 천축보다 멀고

밤마다 시간이 떨어뜨린 눈썹이

죽은 모래의 뼛조각으로 떠밀려 가네

한 시절 건너가는 일이 거미줄을 밟고 가듯

허공에 발자국 새기는 일처럼 아득하여서

내 절망은 적분 같은 것이네 죽는 날까지

한순간도 빠짐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

시간이 쪼아대는 부리를 견디며

살아남는 것만이 희망인 목숨을 건너가야 한다는 것

건너가는 것만이 구원인 목숨을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두어 달쯤 앞당겨 잘못 찢어낸 달력처럼

짐짓 빈 정류장을 지나쳐 버리는 버스처럼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으면 좋겠네

세단뛰기 하는 육상선수처럼

숨을 몰아 쿵쿵쿵,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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