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근본 없다는 말 / 김명기

칠부능선 2022. 3. 5. 14:14

근본 없다는 말 
 김명기

 

마당가 배롱나무 두 그루에 꽃이 한창이다

한 그루는 장날 뿌리째 사다 심었고

한 뼘쯤 더 자란 나무는 가지를 베어 꺾꽂이했다

뿌리째 심은 나무는 사방 고르게 가지를 뻗어 꽃 피우고

베어 심은 것은 뿌리내리며 가지를 뻗느라 멋대로 웃자랐다

그중 제일 먼저 뻗은 가지는 땅을 향해 자란다

죽을 수도 있었는데 죽을 힘 다해 살았겠지

기댈 데가 없다는 건 외롭고 위태롭다

죽을 수가 없어 죽을 힘 다하는 생

뿌리가 얼마나 궁금했으면 아직도 땅을 향해 자라날까

무심코 내뱉는 근본 없다는 말에는 있는 힘 다해 뿌리내리며

허공을 밀어 올리는 수없는 꺾꽂이 같은 삶이 깊숙이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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