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쓴 산문집에 왜 점수를 후하게 주는지,
쉬이 읽히지 않는다. 문장으로는 어려운 게 없는데 마음이 자꾸 턱에 걸린다.
다큐영화 <나의 문어선생님>를 보고 쓴 글, <문어文漁> 두뇌가 영민하고 위장술, 사냥술이 뛰어나며 인문적인 영감을 주는 생물이다. 이 영화를 보고 친구는 문어를 먹지 않고, 며늘은 문어는물론이고 쭈꾸미도 못 먹겠다고 한다.
난 뭔가. 문어와의 교감에 찌릿한 건 잠시고 삶은 문어를 맛있게 먹었다. 이런~~
* 최근에 시집을 엮기 위해 시편들을 정리하며 나는 무슨 시를 구도하고 있는가, 자연스레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모자람 투성이지만 내 시에는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이 섞여있었다. 부조리에 대한 삐딱한 시선은 있으나 평화의 상태를 동경하고 있었다. 가만히 두는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있었다. 추모와 애도, 산 자로서의 불편과 슬픔을 피하지 못하고 있었다. 체험한 것들이 압도적으로 절박했고 생동감이 있었다. 이런 시들이 훨씬 자연스런 언어의 리듬을 내재하고 있었지만 체험이라는 것은 육체적 감정적 고통의 수반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난경이 있다.
-105 쪽
* 문장의 눈은 역사의 눈이다. 예지란 모호한 희망이 아니라 수백 번 역사적으로 선험화된 확증이다. 시가 때로는 샤먼의 주술 같기도 하고 학문적 가설이 될 때도 있다. 문학의 논리성은 사회과학적 논리성을 포괄하여 압도하기 일쑤다. 가령 이런 문장은 어떤가.
세상은 또 바뀔 것이다. 반동 역시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그들은 물어뜯기만 할 뿐 새로운 걸 만들어 내지 못한다.
- 루쉰
나는 시론을 가지고 시를 써본 적이 없지만 이런 문장이 오늘의 변증법적 시론이 아닐까 싶다. 시는 경계를 두는 편식하는 장르가 아니라 생각했다. 감각되어지고 감정이 촉발되는 그 무엇이든 시로서 신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119쪽
* 우기의 아침, 나도 잠깐 우산을 쓸 새가 없었고 생면부지의 어떤 사람들도 머리가 젖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택배기사들, 시설 노동자들, 뭔가를 유지 보수하는 사람들, 음식을 배달하는 사람들, 청소하고 치우는 사람들, 다 시간에 쫓기고 대처해야만 밥이 벌어지는 사람들이었다. '비가 와도 비에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는 시가 있지만, 그 문장은 매혹적이고 시로서는 충분하지만, 실체적인 삶 속에서는 늘 젖은 자가 또 젖는다. 젖은 몸으로 우리에게 젖어온다.
- 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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