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영원한 기쁨 / 장 지오노

칠부능선 2020. 10. 30. 17:49

책에 연필로 밑줄 그은 곳이 있는데도 생소하다.  

장 지오노는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에니메니션으로 유명하다. 척박한 땅에 혼자 나무을 심는 사람, 그 나무가 자라서 숲을 이루는 감동을 많은 사람들이 접했을 것이다.

 

어렵지 않은 문장이 쉬이 읽혀지지 않는다. 오랜만에 길게 붙들고 읽었다.

머리 무거우면서도 집어던질 수 없는 긴장감이 있다. 

황무지와 초원을 번갈아 떠올리며 헐거운 사람들과 원색의 식물, 에덴시대 동물들을 같은 선상에 늘어놓게 된다. 

한 울타리에서 평등한 삶, 공동의 기쁨을 추구했던 그의 평화주의는 우리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가 펼치고자 했던 이상향이 끝난건 아니다. 자연에의 귀환이 지구촌 곳곳에 뿌리 내리고 있으리라 믿는다. 

 

옮긴이가 전하는 - 작품에 쓰지 않았으나 작가의 일기에 남겨진 마지막 장이 비장함의 극이다. 

 

"보비는 죽었다. 고원 위에 있는 그의 시체, 되돌아온 평온, 바람 속의 작은 수정 얼음처럼 뾰족뾰족한 구름, 활짝 열린 빈 하늘, 낮, 고독, 새들이 그 시체 위로 모여들고 있다. 주르당의 마당에서 씨를 먹던 새들보다 더 많은 새, 살코기를 먹는 새들, 까마귀, 까치, 꾀꼬리, 뻐꾸기들. 그 새들이 이 지방의 전 구역에서 오고 있다. .....

땅에서는 개미들이 떼를 지어 보비의 손으로, 얼굴로, 입 속으로 콧속으로 올라가고 있다. 파리들이 입 주위의 찢어진 부분에 들어가서 활동하고 있다. 그 순간, 보비는 한창 분해되고 있다. 그는 우주의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다. .... "

  

나는 요한 세바스탄 바흐의 성가 제목, "주여, 내 기쁨 머무르게 하소서"를 내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 그러나 나는 첫째 말, 가장 중요한 이름을 삭제했다. 그것은 포기하는 의미가 함축되어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육신을 포기하면서 내적 기쁨을 얻는.... 것은 쉽다. 육신을 고려하면서 완전한 기쁨을 추구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몸을 갖고 있고,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의 생명을 받치고 있는 것이 몸이기 때문에, 지성을 만족시키는 것, 그것은 우리를 모욕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오직 육신만이 경탄할 만한 과학을 알고 있다. ...

나는 나를 위한 유형적이고 정신적인 기쁨을 찾았다. 모든 것이 나를 받쳐 주고, 나를 기운나게 하고, 나를 이끌어가며, 봄의 꽃들이 달콤한 즙을 가득 머금은 길다란 흰 뿌리와 함께 내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 (481쪽)

 

 

 

 

 

                                              오래 전에 소심하게 밑줄 친 부분을 보며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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