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칠부능선 2020. 11. 1. 21:46

<살고 싶다는        농담> 순전히 제목에 끌려 고른 책이다. 

42살 허지웅 에세이는 66세 나를 허당으로 만든다.

42년 동안 내가 못해본 것을 참으로 많이 겪었다. 에세이란 겪은 일이 재산임이 틀림없다.

뭐 그가 겪지 못한 걸 내가 겪은 것도 있으니... 24년의 축적이 또 마냥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나는 자위한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자는 음성은 다급하다. 

그러니 남들이 어찌 살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많다. 그래서 당당하게 조언을 할 수 있다. 

겪어보지 않고 하는 위로는 그냥 말일 뿐이지만, 경험을 통과한 말의 진정성은 눈물겹게 기껍다.

 

* 인간이라면 노력하지 않아도 당연히 작동한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 삼키고 뱉고 싸고 자는 모든 것들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거나 아예 먹통이 되었다. 나는 내가 더 이상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처럼 생겼지만 정확히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변기 위에 앉아 있다가 내가 더 이상 사람처럼 배변할 수 없다는 걸 한 시간 만에 깨달았다. 그날 처음 울었다. (41쪽)

 

* 나는 운이 좋았다. 객관화할 수 있는 능력을 빨리 기를 수 있었다. 피해의식이 느껴지고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나는 닉슨을 떠올린다. 닉슨의 노력과 선량함을 떠올린다. 그런 훌륭한 가능성을 가졌던 사람을 완전히 망쳐버린 피해의식에 대해 마지막으로 떠올린다. 그리고 경계한다. 피해의식은 사람의 영혼을 그 기초부터 파괴한다. 악마는 당신을 망치기 위해 피해의식을 발명했다. 결코 잊어선 안 된다. (152쪽)

 

*결국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가장 멋지고 빼어난 것들 덕분이 아니라 언제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오래된 선행들 때문에 구원받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163쪽)

 

*바꿀 수 있는 걸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인간을 니체의 언어로 바꾸어 말하자면, 그것은 위버멘쉬일 것이다. 한때 초인으로 번역되었으나 이제는 극복하는 인간, 혹은 그냥 위버멘쉬라고 이야기한다. 위버멘쉬는 전지전능한 슈퍼맨이 아니다. 말 그대로 스스로를 극복해나가는 인간이다. 영원회귀와 아모르파티는 이 삶이 영원히 똑같이 반복된다 할지라도 주체적으로 끌어안고 긍정하며 살아내야겠다는 자기 선언이었다. (199쪽)

 

주르륵 읽다가 '보통사람 최은희'에서 멈췄다. 

이 책을 이렇게 후르륵 읽어서는 안 되는 것이구나, 마음에 큰 쉼표가 들어왔다. 훅, 

얼굴이 턱 나온 표지가 좀 웃긴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참 따뜻한 사람이구나. 

함께 '최은희 님의 명복을 빌면서 생각한다.

그래, 우리 생에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했지. 그렇게 너무 성실하게 열심히 살면 못 쓰는 거다.

가끔 한눈 팔아가며 쉬엄쉬엄 해찰도 해가며 살아야 가늘게 길게 살 수 있는 거구나. 

난 왜 위로를 이따위로 하는 걸까. 

 

* ... 피해의식과 결별하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기로 결심하라는 것, 무엇보다 등 떠밀려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는 게 아닌 자기 의지에 따라 살기로 결정하고 당장 지금 이 순간부터 자신의 시간을 살아내라는 것, 오직 그것만이 우리 삶에 균형과 평온을 가져올 것이다. 내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 나는 앞으로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마음으로 살아갈 생각이다. 포스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바라며.

 

살아라. (274쪽 끝)

 

 

이렇게 끝을 맺는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다. 암만, 

 

 

'놀자, 책이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 / 박노해 사진에세이 3  (0) 2020.11.10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김수현  (0) 2020.11.07
영원한 기쁨 / 장 지오노  (0) 2020.10.30
잡문 / 안도현  (0) 2020.10.29
짧은 글 긴 침묵 / 미셸 투르니에  (0) 2020.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