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짧은 글 긴 침묵 / 미셸 투르니에

칠부능선 2020. 9. 30. 16:41

잠들기 전, 거의 침대에서 읽었다. 오래전에 읽은 <예찬>의 전편이다.

주르륵 읽혀지지 않기도 하고 야금야금 생각할 거리가 많다. 박학하고 재치있는 문장에 자주 쉼표를 부른다.

 

- 그의 산문은 방만한 수필이 아니다. 그것은 등푸른 생선이다. 구워서 밥상에 올려놓은 생선이 아니라 이제 막 아침빛을 받으며 바다 위로 튀어오르는 생선이다. 자 이제 떠난다. 그 선도 높은 언어의 빛을 낚아채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1998. 8. 김화영

 

미셸 투르니에 전문 번역가인 김화영 선생의 머리말 중 일부다.

그 빛을 낚아채었는지는 모르지만 짧은 풍경들이 스며들기는 했다. 특히 마지막 쳅터인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공감 백배다. 곳곳에 아이러니와 풍자가 장전되어 씨익 웃게도 한다.

번역자로서 1997년 11월 28일 그의 집을 첫 방문한 이야기가 책 말미에 있다. 

 

 

아침의 기도 : 주여, 저의 가는 길 위에, 광휘에 찬 사랑을, 저의 삶을 휩쓸어버릴 사랑을 놓아주소서!

마음도 섹스도 진정된 가운데 이런 기도를 드리는 내게 어찌 두려움과 떨림이 없겠는가. 불타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면 그것이 결국은 성취되고 만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터이니 말이다.

기도에 덧붙이는 말 : 주여, 제가 소원을 빌거든 부디 무조건 들어주지는 마시옵소서! (51쪽)

 

 

뉴 델리의 리버블릭 데이

1977년 초 나는 내 생애에서 가장 큰 여행을 했다. ...

델리에 첫발을 딛는 즉시 나는 내가 일생 처음으로 타관에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적합. 이것이 이 나라에 어울리는 단 하나의 단어다. 처음 찾아가 보는 나라들은 우리가 그 나라에 대해 평소에 지니고 있던 이미지와 많게 혹은 적게 일치한다. 인도의 겨우는 이런 계산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출발하기 전에 나는 이 마하라자와 간디의 나라에 대하여 쓴 가장 오래된 것과 가장 최근의 것을 포함하여 서너 권을 정독해두었다. 실제로 접해본 인도는 이런 독서 내용을 그냥 부정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 

그래서 나는 인도에 관해서는 아무 글도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여러 해가 지난 후에야 나는 저 불가피한 부적합 불일치의 문제를 정면으로 접근해보면서 글을 써보게 되었다. (77쪽)

 

맞다. 인도에 대한 인상을 어찌 필서로 풀겠는가. 

오랫동안 품고 있다가 익히고 삭혀서 겨우 겨우 몇 줄 건지긴 했다.  나도... 

 

 

육체

늙는다는 것, 겨울을 위하여 선반에 얹어둔 두 개의 사과, 한 개는 퉁퉁 불어서 썪는다. 다른 한 개는 말라서 쪼그라든다.

가능하다면 단단하고 가벼운 후자의 늙음을 택하라. (93쪽)

 

 

이 문장을 읽으며 맹난자 선생님의 수필 '모과  한 알'이 떠올렸다.

딱딱하게 마른 모과 한 알을 보며 풀어낸 사유와 통찰이 탄탄한 수필

 

 

그는 베토벤이나 바그너의 마력에 매혹되긴 하지만 동시에 고차원적인 라이벌 의식에서 오는 저 순결한 고통을 맛보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항변하고 있었다. 그는 또한 위대한 언어예술가로서 저 음의 신들이 그들 나름대로 내뿜으며 퍼뜨리는 바를 판독하는 것이었다. 말라르메는 어떤 숭고한 질투심에 가득 차서 연주회장을 나섰다. 그는 너무나 강력한 음악이 그에게서 훔쳐간 신비스럽고도 중요한 그 무엇을 우리의 예술을 위하여 다시 찾아올 방법이 없을지 절망적으로 모색했다. (263쪽) 

 

음악에 관한 글을 읽으며 나는 나의 음악적 무식에 대해 생각했다. 문학보다 음악을 우위에 둔, 이런 강렬한 느낌을 아직 받아보지 못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고인이 된 작가의 약력 

미셸 투르니에 (1924~ 2000) 

파리 한복판에서 태어나는 즉시 그는 그게 세상에서 가장 불친절한 도시라는 것을, 특히 젊은이들에게 그렇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일생 동안 슈브레즈 골짜기의 한 작은 마을의 사제관에서 줄곧 살았다. ....

그는 오랫동안 철학공부를 하고 나서 뒤늦게 소설에 입문했다. 그가 구상한 소설은 언제나 가능한 한 관습적인 외관을 갖춘, 지어낸 이야기들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적극적인 빛을 발하는 형이상학적 하부구조를 감추고 있다. ...

사랑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떤 사람이 누구를 진정한 사랑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게 한 한 가지 표시가 있다. 그건 그의 신체의 어떤 다른 부분보다도 얼굴이 상대에게 육체적인 욕망을 자아낼 때이다."

그의 무덤에 묘비가 세워진다면 이마도 그는 이런 비문을 새겨놓기를 바랐을 것이다.

<내 그대를 찬양했더니 그대는 그보다 백 배나 많은 것을 내게 갚아주었도다. 고맙다. 나의 인생이여!>  (284쪽) 

 

자신이 쓴 작가 약력에 그의 아버지가 죽은 76세가 자신이 죽기에 아주 좋은 나이라고 생각했다. 행운과 이성을 잃지 않은 채 늘그막의 고통과 욕됨을 피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젠장, 그만하면 충분히  산 거 아닌가" 라고 했다. 그러나 세기가 바뀌는 2000년, 그는 자신의 죽음을 '놓쳐버렸다' 그리고 다시 15년을 더 살았다.  

 

김화영 선생은 그후도 미셸 투르니에의 집에 몇 번 더 방문했지만, 2000년 이후에는 새로운 창작활동도 없었고, 노작가의 고요를 깨뜨리기 어려워서 더 이상 방문하지 않았다. 

 

76세, 사망 - 황홀한 일이다. 이 황홀한 일을 쉽게 맞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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