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개 / 김훈

칠부능선 2020. 9. 20. 14:01

 

 

김훈의 장편소설 』는 진돗개 수놈 '보리'의 눈으로 본 세상이야기다.

수몰지역에서 태어나 마을이 물에 잠기게 되자 주인집 작은 아들네인 어촌으로 가게된다. 

그곳에서의 생활도 만만찮다. 주인이 바다에서 실종되자 남은 식구들은 서울로 떠나고...

개의 눈에 비친 사람 풍경이 우리가 느끼는 사람살이와 크게 차이가 없다.

타고난 천성과 살면서 터득한 눈치로 세상을 헤쳐나가는 것, 그 지난한 발바닥의 기록이 뭉쿨하며 짠하다. 

가만히 쓸쓸해지는 소설이다. 

"우우, 우우우, 우우우우우" 

 

 

* 엄마의 젖꼭지를 서로 차지하느라고 형제들끼리 밀쳐내고 올라타면서 버둥거리던 싸움이 내가 이 세상에서 첫 번째 공부였다. 공부라기보다는 저절로 그렇게 된 거였지. 내 몸뚱이를 비벼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때 확실히 배웠고, 일생 동안 잊지 않았어. (16쪽)

 

*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안방이나 마루나 부엌처럼 주인이 사는 구역에는 한 번도 뛰어든 적이 없었어. 장독대나 우물 쪽에도 가까이 가지 않았지. 그게 진돗개야.  (85쪽)

 

* 내 발바닥 굳은 살은 이 세상 전체와 맞먹는 것이고 내 몸의 모든 무게와 느낌을 저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의 저 가볍고 미끄러운 몸놀림은 얼마나 부러운 것인가. 나는 내 발바닥 굳은살로는 건너갈 수 없는 사람들의 세상에 가슴이 저렸다. 나는 혀를 빼서 발바닥 굳은살을 핥았다. (102쪽)

 

* 짖는 소리에는 위엄과 울림이 있어야 한다. 짖을 때, 목구멍에서 놋사발 두들기는 소리가 깽깽깽 나오는 개는 별 볼일 없는 개다. 소리가 목구멍까지도 못 내려가고 입 안에서 종종 대는 개는 그보다도 못하다.

  짖을 때, 소리는 몸통 전체에서 울려나와야 한다. 입과 목구멍은 다만 그 소리에 무늬와 느낌을 주면서 토해내는 구멍일 뿐이다. 몸 속 전체가 울리고 출렁대면서 토해지는 소리가 진짜 소리다. 소리는 화산처럼 터지면서 해일처럼 몰려가야 한다.  (113쪽)

 

*내 마지막 며칠은, 가을볕에 말라서 바스락거렸고 습기 빠진 바람 속에서 가벼웠다. 어디로 가든 거기에는 산골짜기와 들판, 강물과 바다, 비 오는 날, 안개 낀 새벽과 저녁의 노을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고 세상의 온갖 냄새들로 내 콧구멍은 벌름거릴 것이다.  (2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