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웃음과 망각의 책 / 밀란 쿤데라

칠부능선 2020. 9. 12. 12:59

7부로 이루어진 소설인데 각 부가 한 편의 단편인듯, 읽혀지다 중반부 넘어가면 아~~, 하나로 묶이는 이야기들이다.

그럼에도 초반부에 참을성이 필요하다. 책을 덮으면서 역시 쿤데라. 라는 생각이 들지만. 

같은 주제의 일곱가지 변주곡으로 '웃음'을 자꾸 종용하는데... 웃어지지는 않는다. 

이 책으로 인해 쿤데라는 조국 체코의 공민권을 박탈당한다.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대가가 혹독하다. 그럼에도 그는 조금은 가벼워졌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불과 몇 년 전, 프라하 광장에서 버스킹과 마술, 불쇼를 보던 시간을 떠올리며, 이념의 전환 시대, 그 격랑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많다. 피식 웃음 나는 문장들 -

 

* 미래란 다만 아무의 관심도 끌지 않는 무심한 공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는 생명이 넘쳐 우리를

못살게 굴고 도발하고 모욕하고 우리가 과거를 다시 고쳐 쓰고 다시 칠하게끔 우리를 유혹한다.

우리는 과거를 고칠 수 있게 되기 위해서 미래의 주인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우리가 투쟁하는 것은

사진을 수정하거나 전기나 역사를 고쳐 쓰는 연구실에 드나들기 위해서다. <잃어버린 편지들> (37쪽)

 

* 아름다움이란 두 세대의 다른 사람들이 갑자기 장구한 세월을 뛰어넘고 마주쳤을 때 튀는 불꽃이라는 생각이

얼핏 떠올랐다. 그리고 또 아름다움이란 연대의 소멸이요, 시간에 대한 반항이라는 생각도 떠올랐다.

그리하여 드는 그러한 이름다움과 아름다움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에 온통 잠겨 있가 불쑥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겠어요?"

 <어머니> (82쪽)

 

* 우리가 책을 쓰는 것은 자기 자식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 주기 않기 때문이다. 누군지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것은 자기 아내에게 이야기하면 귀를 막아 버리기 때문이다. (138쪽)

 

서광 (책을 쓰고 싶다는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은 사회의 발전이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기본 조건을 총족시킬 때,

숙명적으로 악성 유행병 규모로 퍼져 버린다.

1. 전반적으로 물질 생활의 수준이 높을 것,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무익한 활동에 헌신할 수 있게 된다.

2. 사회 생활의 세분화가 상당히 진행된 결과 개개인의 전반적 고립화 정도가 높을 것.

3. 한 국가의 국내 발전에 있어 눈에 띌 만한 사회적 변동에 철저히 결여되어 있을 것. 

<잃어버린 편지들> (139쪽)

 

* 젊은 유방 옆에서 늙은 유방은 이제 생기가 없고, 반대로 젊은 유방도 실제보다 늙어 보였으며,

또 유방도 전부 한데 모이니까 한결같이 기묘하고 시시한 것이 된다는 것을 알고 우울해졌다.  <경계>  (330쪽)

 

*  " ~ 더욱 묘한 것은 이 나체들이 모두 아름답다는 거예요. 저봐요. 노인의 몸도 병든 사람의 몸도 그저

몸에 의복이 없는 그냥 몸이 되면 아름다워지는 것 같아요. 모두 자연처럼 아름답잖아요?

늙은 나무가 젊은 나무보다 덜 아름답지 않고, 병든 사자라도 역시 백수의 왕이에요.

인간의 추함이란 의복의 추함이에요" (3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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