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소명으로서의 정치 / 막스 베버

칠부능선 2020. 9. 9. 16:39

몇 장 읽고 밀어둔 책을 다시 잡았다. 

최장집 교수의 정치철학 강의로 시작하는 1장은 좀 어렵다. 그래서 읽다 둔 건데

이번엔 2부 막스 베버의 강의록을 먼저 읽으니 잘 읽힌다. 다시 돌아와 미흡한 부분 해설을 읽어보니 역시 어렵다.

문학보다 문학평론이 잘 안 읽히는 것과 같다. 

그야말로 주옥같은 말씀이 줄줄이다. 비관론이라기는 그렇고, 약간 시니컬하다고 할까. 

이상정치와 현실은 다르다는 것, 그도 선거에 나섰지만 낙선하고 그의 부인이 바덴 주 의원으로 당선되어 부르주아 여성운동의 지도자가 되었다고 한다. 

 

별 차이가 없는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와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 미국과 유럽의 예를 들며 '소명으로서의 정치'의 어려움을 일깨운다. 그가 활약하던 시대에는 1인1표의 평등투표시대가 아니었다는 것이 놀랍다. 그가 죽은지 100년 되었는데  정치가와 권력에 대한 견해에 이질감을 느낄 수 없다. 

정치가에게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를 구분함으로써, 두 개의 대립적 명제의 복잡성을 말하지만 이것이 결합될 때,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질 수 있다.

 

 

* 미국에서 정당들은 뚜렷한 자본주의적 노선에  따라 운영된다. 그들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긴밀하게 조직되어 있다. 미국에서 이런 종류의 정당 구조를 반전시키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미국이라는 '신천지'가 가졌던 높은 수준의 민주화 덕분이다. (184쪽)

 

* 정치가에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다음 세 가지 자질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열정, 책임감, 그리고 균형적 판단이 그것이다. 여기서 열정이란 '대의' 및 이 대의를 주관하는 신 또는 인간과 신에 대한 열정적 헌신을 가리킨다.

고인이 된 나의 친구 게오르크 지멜이 '불모의 흥분 상태'라고 부르던, 그런 내적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196쪽)

 

* 매일 그리고 매 순간 정치가는 자신의 내부로부터 스스로 위협하는 사소하고도 지극히 인간적인 적과 싸워 이겨야만 하는데, 그것은 바로 허영심이다. 허영심은 대의에 대한 모든 헌신과 자기 자신에 대한 그 모든 거리감을 유지하지 못하게 하는 치명적인 적이다. (198쪽)

 

* 사랑의 윤리는 '악에 대해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정치가는 정반대의 격언, 즉 '너는 악에 대해 폭력으로 저항해야만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악의 만연에 대한 책임은 너에게 있다'라는 명제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208쪽)

 

** 자신의 영혼 또는 타인의 영혼을 구제하고자 하는 자는, 이를 정치라는 방법으로 달성하고자 해서는 안 된다. 정치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과업을 갖고 있는데, 이는 폭력 / 강권력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만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225쪽)

 

**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대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해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확신을 가진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 (231쪽)

 

 

독일정치의 작동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요인들은 첫째, 의회의 무기력함으로 지도자적 자질을 가진 사람이 의회에 오래 머물지 않고, 둘째, 훈련된 전문 관료층이 몰려 있어 의회는 유능한 행정수반을 키워 낼 수가 없었으며, 셋째 정치적 신념을 가진 이념정당들이 소수당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격렬하게 양분된 우리 정치 현실에 대해 생각해본다. 적폐가 무엇인가, 없앨 수 있는 것인가. 

 

'불모의 흥분 상태'는 오늘날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객관적 책임성이 부재, 또는 결핍을 가져온다고 경계한다.

서글픈 정치 현실이 지금과 다르지 않다. 이 시니컬한 주장에 나는 120% 공감하며 씁쓸하다.

이 책은 아들에게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