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아름다운 단단함 / 오길영

칠부능선 2020. 9. 7. 13:47

 

권성우 평론가를 통해 알게 된 오길영 교수, 

문학평론가가 쓴 단단한 에세이를 만났다. 책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문다. 

 

에세이는 소설이나 희곡과 같은 허구가 아닌 산문을 가리킨다. 에세이의 어원은 '시도하다', '시험하다'란 뜻을 지닌 라틴어 'exigere'이다. 에세이는 사유를 실험하는 글쓰기다.

에세이는 그만의 고유한 표현과 문체를 요구한다. 에세이의 문체는 현란한 글재주가 아닌 지성적 사유의 표현이다. 지성의 출발은 성찰이고 자기 응시다. 이런 것들이 빠질 때 에세이는 역겨운 자기 자랑이나 감상주의에 물든 글로 전락한다. 에세이는 단지 감각의 글쓰기가 아니라 지성의 표현이다. 

여기 묶은 산문들이 얼마나 지성적 사유에 걸맞는지 자임할 수 없다. 부끄러운 마음이 더 크다. 하지만 대체로 말랑말랑하게 감각에만 호소하는 글들이 에세이의 본령인 양 간주되는 분위기에서 그것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내 나름의 욕망은 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글쓰기의 영토에도 다양한 글쓰기의 형식과 내용의 실험이 펼쳐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일종보다는 다수종이 언제나 생태계에 유익한 법이다.  '머리글' 중에서

 

머리글 만으로 내가 쓰고싶은 수필에 대해 다 말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며 읽는다. 

 

1부- 세상, 2부 -영화,  3부- 책으로 구성했다.

 

*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문학은 극한적인 삶에서 발생하는 극한적 사유(알튀세르)의 표현이다. 극한적인 삶은 도덕주의를 설파하는 도덕군자의 삶이 아니다. 오히려 도덕주의의 근거를 해체하고 돌파하는 삶이다. 도덕(주의)은 문학의 적이다. 문학은 극한만을 사유한다. 문학에서 지성이 필요한 이유다.  (20쪽)

 

*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을 읽었다. 신상을 이성이나 지성과 대립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광신도들이나 '믿음' 지상주의자들에게 하는 조언을 담은 책으로 나는 읽었다. 신앙과 광신은 종이 한 장 차이이며, 그 경계의 판가름은 지성의 유무에 달려있다. 문학예술계만이 아니라 제도권 종교계에도 고유한 지혜와 지성이 필요하다. 이 책은 두고두고 앞으로 되풀이해서 읽을 만하다. 물론 스피노자가 만하는 '신'은 제도권 종교의 신 개념과는 다르다. 이 책은 그 점에서도 도발적이다. 

(39쪽)

 

* '아름다움이란 뜻은 알다, 깨닫다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세계와 자기를 대면하게 함으로써 자기와 세계를 함께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아름다움은 우리가 줄곧 이야기하고 있는 성찰, 세계의식과 직결됩니다.

- 신영복의 『담론』 중에서

---(신영복) 선생은 아름다운 에세이스트셨다. 선생은 "필자는 죽고 독자는 끊임없이 탄생하는 것"이라고 쓰셨다. (96쪽)

 

 

2부에서 소개한 22편 영화 중에 내가 못 본 건 두 편이다. 앞뒤 글에 비해서 좀 싱겁다.

 

3부에서 다룬 책 중에 몇 권을 찜했다. 마음 먼저 든든해진다. 

미셀 투르니에 - 『짧은 글, 긴 침묵』

진은영 -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쟌 모리스 - 『쟌 모리스의 50년간의 유럽 여행

 

 

 

* 이 책의 미덕은 책 전체를 감싸는 따뜻한 유머, 그리고 때로 등장하는 날카로운 풍자의 절묘한 결합이다. 좋은 책은 이런 재미없는 감상이나 요약이 아니라 직접 읽어봐야 가치를 느낀다는 말은 이 책에 적용된다.  (3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