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예술 상인 / 정경

칠부능선 2020. 5. 12. 22:58

 

   정경 교수의 오페라마 <하이레벨>은 특별했던 공연이다.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에서 사온 책이다.

  '예술 상인'의 선언에는 도도한 자신감이 서려있다. 시대를 거슬러 고려와 조선의 억누렀던 '사농공상'을 뒤집어 놓는다.

  고고한 자리에 있던 클래식을 대중의 눈높에 맞춰 어깨동무를 청한다. 예술이 팔여야 국민이 행복할 수 있다면서.

 

   각 챕터 앞에 소개한 짧은 글들이 압권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정작 내가 터득한 것은 어떻게 죽어갈 지였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우리 눈앞의 현실을 당장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먼저 바꿔야 한다." - 니스코 카잔차키스

  "범인凡人은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거짓을 말하지만, 예술가는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거짓을 만들어낸다."

 

  진실을 전하기 위해 무엇이라 불리워도 좋다는 포부가 당차다. 관객의 환희를 위하여, 지치지 않는 광대를 꿈꾼다.

  그가 자신과 동류에 놓은 '또 다른 예술상인'은

  율곡 이이, 플라시도 도밍고, 장승업, 자코모 푸치니,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살바도르 달리, 앤디 워홀 들이다.

  이들의 면모를 보면 그의 지향점이 보인다.

  시대를 온전히 담아내거나 시대비판을 담고 있다. 초 시대적인 시야의 도전정신을 갖고 있다. 열린 의식과 예술적 광기가 있다.

  사유와 포부에 비해 책의 구성이 헐겁다. 이것 또한 책을 멀리하는 독자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한 예술상인의 전략인지도 모른다.

  100분의 공연시간이 아쉬웠던 것처럼, 책도 단숨에 읽힌다.

 

* 오페라마라는 새로운 장르의 가장 핵심적인 원칙과 신념은 바로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인류 역사상 발생한

모든 문제 해결과 해소 과정은 인간이 의문을 품고 스스로 숙고하는 과정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46쪽)

 

* 화장지 박스의 겉면에 고흐나 르누아르의 명화를 인쇄하자 매출이 15% 이상 증가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다.

 예술과 상업의 결합은 이처럼 긍정적인 흐름을 가져올 수 있다. (79쪽)

 

* 예술로서의 명품이란 기교를 바탕으로 예술가 본인이 가지고 있는 '독창적 자아'가 온전히 표현된 작품이어야 한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현 시대 혹은 인류의 삶과 부합하는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하며, 나아가 다음 세대와의 접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연결 고리로서의 철학과 신념을

 담고 있어야 한다. (131)

 

* 나는 실천으로 내일을 설계한다.

 내가 남들보다 유일하게 잘하는 것은 노래가 아닌 실천이다. ....

 예술상인으로서의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한 바 있다. '생각은 곧 행동으로 옮기는 일에 있어 어떠한

 주저나 망설임도 가지지 않을 것' (168쪽)

 

 *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직후 나는 결심했다. 빈틈없고 기계적인 예술인이 아닌, 품이 넓고 따뜻한 예술상인으로

 거듭나겠노라고 (176쪽)

 

  책을 덮고 나니 왜이리 마음이 든든해지는지, 예술이 가까이 손짓한다. 그의 힘찬 행보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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