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시의 힘 / 서경식

칠부능선 2020. 4. 12. 15:12

 

부활절 아침,

대녀로부터 은총을 비는 카톡이 왔다.

나두 대모님께 컨닝해서 전달. 이런 날라리라니...

 

 

 

  권성우 평론가의 글을 읽으며 '서경식'을 알게되었다.

  그가 낸 책 중에 '문학'을 주제로 한 첫 책이다.

  '절망의 시대, 시는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는가

 <시의 힘>이라니, 안 봐도 읽히는 건 뭔지. 이 눈물겨운 힘에 마음을 열어본다.

 

 '되다 만 시인'이라는 그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30,40권의 책을 냈다. 

  재일조선인, 마이너리티, 식민지주의, 전쟁 책임과 같은 문제를 다룬 평론들이 대부분이다.

  <시의 힘>은 시적 상상력을 말하며 문학이 저항의 무기로서 유효한지, 이것이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지...

  루쉰의 말을 빌어 '걸어가면 길이 되기' 때문에 걷고 있다고 한다.

 

  재일조선인1세 여성 인 오기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절절하게 다가온다.

  '오기순은 1920년대 초반에 조선의 충청남도에서 태어나 1928년에 일본으로 건너왔다. 자녀들 가운데 둘은 훗날 한국에 모국 유학을

  갔다가 정치범으로 투옥당해 각각 19년과 17년의 옥살이를 마친 서승과 서준식이다.

  오기순은 아들들의 출옥을 보지 못한 채 1980년 일본 교토 시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추도문집간행위원회가 펴낸 책에 넷째 아들인

  서경석이 쓴 '죽은자의 짐을 풀어주기 위하여'라는 추도사에 보면 어머니는 글을 쓸줄 몰랐다.

  서울에 두 아들이 투옥해 있을때 면회를 가면 이름과 주소를 써야하기때문에 그때서야 공책에 빼곡히 연습한 노트가 남아있다.

  스스로 글을 쓰지 못했지만, 아들들을 위해 사회를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어떻게 냈을까.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를 잠깐 떠올리기도 했다.

 

  * 재일조선인 및 일본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에게 '한국 비전향 정치범 어머니'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내가 보기에 이 이미지는 실제 모습에서 약간 비껴나 있었는데, 그대로 고정되어버린 구석도 있다.

  쉬운 예를 들자면 서승이 이야기한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자궁암 수술을 받은 어머니는 (그것이 재발해 세상을 떠났는데),

  면회하러 온 서승이 "어머니 다시 태어난다면 뭐가 되고 싶어요?" 하고 물었더니 어머니가 "글쎄, 몽골인이 좋겠네" 하더란다.

  너무나 뜻밖이라 웃음이 나올 법한 대답이었다.

  "왜 몽골인인데?" 하고 서승이 물었더니 "좋잖여? 들판을 말 타고 달리니께" 했다는 것이다.

   ... 그것은 여성 차별도 정치적 억압도 없는 광활한 천지에서 살고 싶다는, 어머니 나름의 꿈같은 소원의 표현일 것이다.

   (193쪽)

 

  *픽션화된 생명

  어느 날 강의가 끝난 후 학생의 감상문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교수님은 탈원전을 역설하지만, 나처럼 아직 참정권도 없는 놈이 아무리 발언해봤자 의미가 없다. 의미 없는 일을 생각해봤자

  헛일이다" 

  이것을 읽고 나는 부아가 치밀었다. 이 학생에게가 아니라 이 사회의 젊은이가 한 개인으로 서기 위해 '등뼈'를 이렇게까지 부숴버린

  어른들에게 말이다. 헌법9조의 공동화空銅化를 추진하고 원전 재가동을 추진하는 정부를 떠받드는 어른들이, 무슨 수로 아이들에게

  '생명의 존엄'을 떠들 수 있겠는가. 어이들은 어른의 위선을 눈치채고 현실을 '픽션화'하는 것으로 자신을 지키려 한다. 하지만 현실은

  픽션이 아니다. 현실의 방사능 오염은 그들을 위협하고, 전쟁이 벌어지면 그들은 자신과 타인을 해쳐야만 한다. (269쪽)

  ....

 

   수업 마지막에, 이시가키 린의 '산다는 것'을 소개했더니, 그때까지 무표정하던 학생 하나가 반응을 보였다.

  "눈물 날 것 같아. 이거 내 얘기예요.... ."

  모든 것을 픽션화해왔던 젊은이가 시의 힘으로 처음 '생명'을 실감하는 순간,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어쩌면 나만의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산다는 것

 - 이시가키 린

 

  안 먹고는 살 수가 없다.

  밥을

  푸성귀를

  고기를

  공기를

  빛을

  물을

  부모를

  형제를

  스승을

  돈도 마음도

  안 먹고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부풀어 오른 배를 안고

  입을 닦으면

  주방에 널려 있는

  당근 꼬리

  닭 뼈다귀

  아버지 창자

  마흔 살 해질녘

  내 눈에 처음으로 넘치는 짐승의 눈물.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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