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북인에서 첫 번째 수필 선집으로 반숙자 선생님의 책이 나왔다.
'북인수필선'은 등단 20년 이상이고, 개인 수필집 세 권 이상 출간한 작가 중에 선정위원들의 심사를 거쳐 선정된다.
하드장정에 63편이 실렸다. 튼실하고 알차다.
반숙자 선생님을 떠올리면 두 손이 모아지고 고개가 숙여진다.
빛나는 삶을 관통해서 빚어진 작품들이 가슴을 울린다.
<빛나지 않는 빛> - 진광불휘가 떠올랐다.
번쩍거리지 않는 진짜 빛, 소박하나 아우라가 서려있는 깊은 빛이다.
'종일 가야 입을 열어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는 하루, 이 상태가 오래 가면 그나마 어눌한 말도 다 잊을 것 같다.
이것이 물리적인 격리라면 나는 수필을 만나기 전 심적인 자가격리를 하고 살았다. 수필은 자폐의 광야에서 손잡아 이쪽 세상으로 안내해주었다.
부정의 암흑을 깨고 긍정의 옷을 입혀준 존재다. 독자에게 가기 전에 스스로를 위로해주고 치유하여 재생의 옷을 짜게 했다. '
- '책을 펴내며' 중에서
40년 동안 수필집 일곱 권과 선집 두 권이 전 재산이라는데,
이번은 열 번째 책이며 선집이기때문에 오래 전에 읽은 작품인데도 울컥거리는 지점에서 또 걸린다.
알면서도 덜컥, 숨을 몰아쉰다.
서정수필의 정수다.
<열쇠없는 집>에 보면 겨울동안 비어있는 농막에 밤손님이 간간이 다녀간다. 산속 남의 빈집에 스며들 누군가에게
'누추한 집을 찾아주셨군요.' 로 시작하는 격려와 용기를 주는 마음을 꾹꾹 담은 편지를 써서 주방 식탁 위에 붙여놓는다.
라면과 물을 넉넉하게 준비해 놓고, 그의 안위를 빌어준다.
나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경지를 다만 우러른다.
<가슴으로 오는 소리>청력을 잃고 절망 앞에서 새로운 빛을 만난 전환의 순간은 다시 읽어도 가슴이 저릿해온다.
'아직 성한 두 눈과 두 손, 두 발, 그리고 병들지 않은 싱싱한 마음, ... 들리지 않는 불행보다 볼 수 있는 희망을 선택한 것이다.'
아껴 읽으며 마음 깊이 품는다.
우안거雨安居에 들고 싶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거침없이 물들기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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