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술, 여럿이 혼자서

칠부능선 2017. 2. 23. 14:55

술, 여럿이 혼자서

노정숙

 

 

  유리창에 ‘낮술, 혼술 환영’이란 문구가 붙어있다.

행사를 마치고 같은 방향으로 오던 셋이서 ‘한잔만’ 하며 들어간 술집이다. 혼자 창밖을 보고 앉을 수 있는 자리와 테이블이

대여섯 개로 아담하다. 정면에 오래된 LP판이 빽빽하게 줄 서있고 옛날식으로 신청곡도 받으며, 한쪽에는 내가 입던

고등학교 교복과 남학생 교복, 교련복이 걸려있다. 그때 즐기던 음악이 흘러나오고 벽에 붙은 그 시절 촌티 나는 영화 포스터에

선웃음을 짓는다.

  단정하게 생긴 젊은 주인은 남학생 교복을 입고 팔에는 노란색 전교회장 완장을 차고 서빙을 한다. 완장, 이것도 요즘 볼 수 없는

물건이다. 그 시대의 ‘완장의 힘’을 생각하고는 싱겁게 웃으며 다시 고등학생이 된 듯 마음이 풋풋해진다.

  각자 취향대로 맥주와 청하와 따끈한 사케를 마셨다. 상대의 잔이 비었는지 서로 신경 쓰지 않고 각자 알아서 주량만큼 마신다.

같이 있으면서도 왠지 합일이 안 되는 풍경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방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함께 마시면서도 서로를 존중하며

또 홀로 즐기는 주법酒法다.

  혼술의 원조는 이백李白이 아닐까 싶다. 달빛 아래서 달과 그림자와 벗하여 홀로 마시며, 하늘과 땅이 술을 사랑하였으니 내가 술을

사랑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하며, 청주는 성인에 비하고 탁주는 현자와 같아 그들을 마셨으니 신선이 되려는지,

술 석 잔이면 도를 깨달을 수 있고, 술 한말이면 자연과 하나 된다며, 홀로 술 마시는 즐거움을 노래한다. 이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

읽으며 어느새 나도 둥둥 풍류에 취한다.

  샘에 물이 천천히 고이듯 혼자 고요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 혼술의 즐거움을 모른다.

혼자 마시는 술을 생각하니 왠지 홀짝홀짝, 소리가 난다. 대취하면 챙겨줄 친구가 없으니 과하게 마시지 않을 듯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술 자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 언저리의 것들을 즐기는가 보다. 술이 빠지는 모임도 좋고, 술과 함께 하는 모임도 좋아한다.

술이 빠지는 모임은 실수거리가 없지만 끈끈함도 적다.

  취중진담은 비겁한 만용인지도 모른다. 평소 소극적이며 점잖은 사람 중에 술버릇 나쁜 사람은 억제된 감정이 표출되기 때문이다.

점잖다는 것은 절제된 감정을 유지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기에 긴장이 더 많을 것이다. 용기가 필요한 순간에, 일상의 틀을 벗어버리고

싶을 때, 자신 속에 침잠하고 싶을 때 취하고 싶다. 취하면 단순하고 솔직해진다. 방어 메커니즘이 느슨해져서 에고를

무장 해제시키는 일은 술이 가장 쉽고 빠르다. 살짝 취해 몸에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실실 웃음이 나온다.

목소리가 커지고 마음은 둥실 허공에 뜬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서 놓여나고 싶을 때도 도움이 된다.

  취기에 어울리는 시간이 저녁이라는 것도 잊어야 한다. 낮술을 권하는 시인이 있다. 낮술 몇 잔을 마시고 나면 눈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세상이 환해지고 햇살이 황홀해지며 밤술에 없는 그 무엇이 있다고 한다. 시인의 강력한 추임새에 나도 태양 아래서

낮술을 마셔보니 쉬이 취하는 속성이 있고, 환하게 남은 햇살로 황홀해지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여유로운 건 좋은 일이다.

  쌓아 두기만 하면 썩을 수밖에 없는 속내를 넘치기 전에 취기를 핑계 삼아서 조금씩 흘려보내야 한다. 풀어놓으므로 해방되는,

쏟아내면서 넉넉해지는 것이 있다. 가볍게 사는 것 때로는 얕은 재미에 빠지는 것은 건강한 정신을 위해서 좋다.

  술을 통해 하나가 되는 의식이 있다. 신입사원의 신고식, 새내기들의 사발식이다. 술을 통해 서로 탐색하는 기간을 줄이고

단시간 내에 동류의식을 키운다. 하지만 이것도 옛이야기다.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하는 시절은 지났다. 요즘 대학과 군대에서도 강제로

술을 권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강요사항이었던 시절이 규율도 잘 잡히고 군기도 세었다며 그리워하기도 한다. 요즘은 직원단합식도

공연관람 같은 문화행사로 대체하며 취하는 걸 거부하기도 한다. 명석하고 감정이 분명한 세대답다. 하기는 제대로 술을 마시려면

끼리끼리 속닥하게 마셔야 한다.

  일찍이 조지훈은 주격을 18단계로 나누었다. 술을 못 마시지는 않으나 안 마시는 사람을 9급 불주라 하며 가장 하위에 둔다.

색주는 성생활을 위해 술을 마시며, 반주는 밥맛을 돋우기 위해서 마신다. 이는 모두 초보의 단계다. 초급에 이르러서야 학주,

술의 진경을 배운다. 초단은 무리를 지어 술을 취미로 마시는 주도며, 주도 삼매에 든 사람은 술을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주성酒聖, 이는 술의 맛과 멋을 아는 최고의 경지다. 마지막 단계는 9단, 명인급으로 폐주, 열반주라 하며

술로 인해 저 세상으로 떠난 사람을 이른다.

  요즘 나는 마셔도 안 마셔도 그만인 걸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주도 삼매’에 이르렀나보다. 술의 맛과 멋도 모르면서 실없이 통 큰 척

하는 것도 술을 친하게 여긴 덕분이 아니겠는가. 감정을 증폭시키는 힘을 가진 술은 우리 몸에 어느 정도 필요하다.

 슬플 때 마시는 술은 슬픔의 감정을 배로 심화시키고, 기쁠 때 마시는 술은 기쁨을 배로 늘려준다. 우울하거나 화나거나 억울한 일이

있을 때 심연까지 빠졌다 나오면 속이 잠시 괴로워도 머리는 가볍고 맑아지기도 한다.

  취했을 때 아름다운 사람을 최고로 친다는 한 작가의 말에 무릎을 친다. 흥취가 솟아났는데 부드럽고 조심스럽다면 그와 평생 친구가

될 자격이 있다. 이는 술에 휘둘리지 않고 술을 거느리며 함께 노니는 모습이다.

  쥔장의 검은색 교복에 ‘노갈휘’라는 명찰이 눈길을 끈다. 안주의 주종이 노가리라는 뜻이겠지만 그 시절 입담 좋은 친구한데 노가리

잘 푼다고 했다. 그 입담 좋던 친구들도 여지없이 함께 늙어간다. 하얀 칼라 위에 귀밑 1센티로 자르던 단발머리 시절이 그리운가.

까까머리에 남학생들도 ‘빳다’를 맞던 그 시절이 그리운 건가. 교복입고 접대하는 이 술집이 살갑게 느껴진다.

  그날도 난 술에 취하지 못하고 배만 불렀지만, 교복 입던 시절에 취해서 얼굴이 불콰했다.

 

 

<한국작가> 2017년 봄호 통권 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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