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 필사 +

요동벌의 한 울음 / 박지원

칠부능선 2013. 2. 2. 17:00

비슷한 것은 가짜다열아홉번째 이야기중에서

 

 

요동벌의 한 울음

- 好哭場論

 

 

초팔일 갑신 맑음. 정사와 가마를 같이 타고 삼류하를 건너, 냉정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십여 리를 가서 한 줄기 산자락을 돌아 나오자, 태복이가 갑자기 몸을 굽히고 종종걸음으로 말 머리를 지나더니 땅에 엎디어 큰소리로 말한다.

백탑 현신을 아뢰오.”

태복이는 정진사의 말구종군이다. 산자락이 아직도 가리고 있어 백탑은 보이지 않앗다. 채찍질로 서둘러 수십 보도 못 가서 겨우 산자락을 벗어나자, 눈빛이 아슴아슴해지면서 갑자기 한 무리의 검은 공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내가 오늘에야 비로소, 인간이란 것이 본시 아무 데도 기댈 곳 없이 단지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서야 걸어다닐 수 있음을 알았다.

말을 세우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서 말하였다.

좋은 울음터로다. 울 만하구나.”

정진사가 말했다.

이런 하늘과 땅 사이의 큰 안계眼界를 만나서 갑자기 다시금 울기를 생각함은 어찌된 것이요?”

내가 말했다.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오. 천고에 영웅은 울기를 잘하고 미인은 눈물이 많다 하나, 몇 줄 소리 없는 눈물이 옷소매로 굴러 떨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네. 소리가 천지에 가득 차 마치 금석金石에서 나오는 것 같은 울음은 아직 들어보지 못하였네. 사람들은 단지 칠정 가운데서 오직 슬퍼야 울음이 나오는 줄 알 뿐 칠정이 모두 울게 할 수 있는 줄은 모르거든.

기쁨이 지극해도 울 수가 있고, 분노가 사무처도 울 수가 있네. 즐거움이 넘쳐도 울 수가 있고, 사랑함이 지극해도 울 수가 있지. 미워함이 극에 달해도 울 수가 있고, 욕심이 가득해도 울 수가 있다니. 가슴 속에 답답한 것을 풀어버림은 소리보다 더 빠른 것이 없거니와, 울음은 천지에 있어서 우레와 천둥에 견줄 만하다 하겠소. 지극한 정이 펴는 바인지라 펴면 능히 이치에 맞게 되니, 웃음과 더불어 무엇이 다르리오?

사람의 정이란 것이 일찍이 이러한 지극한 경지는 겪어보지 못하고서, 교묘히 칠정을 늘어놓고는 울음을 슬픔에다 안배하였다네. 그래서 죽어 초상을 치를 때나 비로소 억지로 목청을 쥐어짜 아이고등의 말을 부르짖곤 하지. 그러나 진정으로 칠정이 느끼는 바 지극하고 참된 소리는 참고 눌러 하늘과 땅 사이에 쌓이고 막혀서 감히 펼치지 못하게 되네. 저 가생이란 자는 그 울 곳을 얻지 못해 참고 참다 견지지 못해 갑자기 선실宣室을 향하여 큰소리로 길게 외치니, 어찌 사람들이 놀라 괴이히 여기지 않을 수 있었겠소.“

정진사가 말했다.

이제 이 울음터가 넓기가 저와 같으니, 나 또한 마땅히 그대를 좇아 한 번 크게 울려 하나, 우는 까닭을 칠정이 느끼는 바에서 찾는다면 어디에 속할지 모르겠구려.”

내가 말했다.

갓난아기에게 물어보시게. 갓난아기가 갓 태어나 느끼는 바가 무슨 정인가를 말이요. 처음에는 해와 달을 보고, 그 다음엔 부모를 보며, 친척들이 앞에 가득하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오. 이같이 기쁘고 즐거운 일은 늙도록 다시는 없을 터라 슬퍼하거나 성낼 까닭은 없고 그 정은 마땅히 즐거워 웃어야 할 터인데도 분노와 한스러움이 가슴 속에 미어터지는 듯하다오. 이를 두고 장차 사람이란 거룩하거나 어리석거나 한결같이 죽게 마련이고, 그 중간에는 남을 허물하며 온갖 근심 속에 살아가는지라 갓난아기가 그 태어난 것을 후회하여 먼저 스스로를 조상하여 곡하는 것이라고들 한단 말이지. 그러나 이는 갓난아기의 본마음이 절대로 아닐 것일세.

아이가 태 속에 있을 때는 캄캄하고 막힌 데다 에워싸여 답답하다가, 하루아침에 넓은 곳으로 빠져 나와 손과 발을 주욱 펼 수 있고 마음이 시원스레 환하게 되니 어찌 참된 소리로 정을 다해서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있겠소? 그런 까닭에 마땅히 어린아이를 본받아야만 소리에 거짓으로 짓는 것이 없게 될 것일세. 금강산 비로봉 꼭대기에 올라 동해를 바라보는 것이 한바탕 울 만한 곳이 될 만하고, 황해도 장연의 금사산이 한바탕 울 만한 곳이 될 만하오. 이제 요동벌에 임하매, 여기서부터 산해관까지 일천이백 리 길에 사방에는 모두 한점의 신도 없이 하는가와 땅 끝은 마치 아교풀로 붙이고 실로 꿰매 놓은 것만 같아 예나 지금이나 비와 구름이 다만 창창할 뿐이니 한바탕 울 만한 곳이 될 만하오.“

한낮은 너무나 더웠다. 말을 재촉하여 고려총과 아미장을 지나 길을 나누었다. 주부 조달동 및 변래원, 정진사, 하인 이학령과 더불어 구요양에 들어가니, 그 번화하고 장려함은 봉황성의 열 배나 된다. 별도로 <요동기>가 있다.

열하일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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