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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설 / 윤오영

칠부능선 2012. 10. 3. 22:42

깍두기설

                                                                                                                                                                                                            윤 오 영

 

  C군은 가끔 글을 써 가지고 와서 보이기도 하고, 나와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나도 그를 만나면 글 이야기도 하고 잡담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때가 많다.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깍두기를 좋아한다고, 한 그릇을 다 먹고 더 달래서 먹는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깍두기를 화제로 이야기를 했다.

  깍두기는 이조 정종正宗 때 영명위永明尉 홍현주洪顯周의 부인이 창안해 낸 음식이라고 한다. 궁중에 경사가 있어서 종친의 회식이 있었는데, 각궁各宮에서 솜씨를 다투어 일품요리一品料理를 한 그릇씩 만들어 올리기로 했다. 이때 영명위 부인이 만들어 올린 것이 누구도 처음 구경하는 이 소박한 음식이다. 먹어 보니 얼근하고 싱싱한 맛이 일품이다. 그래서 위에서 "그 희한한 음식, 이름이 무엇이냐?"고 하문하시자, "이름이 없습니다. 평소에 우연히 무를 깍둑 깍둑 썰어서 버무려 봤더니, 맛이 그럴 듯 하기에 이번에 정성껏 만들어 맛보시도록 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깍둑이구나." 하고 크게 찬양을 받고, 그 후 오첩 반상의 한 자리를 차지해서 상에 오르게 된 것이 그 유래라고 한다. 그 부인이야말로 참으로 우리 음식을 만들 줄 아는 솜씨 있는 부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다른 부인들은 산진해미山珍海味 희귀하고 값진 재료를 구하기에 애쓰고 주방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무 파 마늘은 거들떠보지도 아니했을 것이다. 갖은 양념 갖은 고명을 쓰기에 애쓰고, 소금 고추가루는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재료는 가까운 데 있고 허름한 데 있었다. 옛날 음식 본을 뜨고 혹은 중국사관(中國使 )이나 왜관(倭 )음식을 곁들여 규격을 맞추고 법도 있는 음식을 만들기에 애썼으나 하나도 새로운 것은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궁중에 올릴 음식을 그런 막되게 썰은 규범에 없는 음식을 만들려 들지는 아니했을 것이다. 무를 썰면 곱게 채를 치거나 나박김치본으로 납작납작 예쁘게 썰거나 장아찌본으로 걀쭉걀쭉하게 썰지, 그렇게 꺽둑 꺽둑 썰 수는 없다. 기름 깨소금 후추가루식으로 고추가루도 적당히 치는 것이지 그렇게 시뻘겋게 막 버무리는 것을 보면 질색을 했을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 깍두기는 무법이요 창의적인 대담한 파격이다.

  그러나 한국 음식에 익숙한 솜씨가 아니면 이 대담한 새 음식은 탄생될 수 없다. 실상은 모든 솜씨가 융합돼 있는 것이다. 이른바 무법 중의 유법이다. 무를 꺽둑 꺽둑 말 써는 것은 곰국 건지 썰던 솜씨요, 무를 날로 먹도록 한 것은 생채 먹던 솜씨요, 고추가루를 벌겋게 버무린 것은 어리굴젓 담그던 솜씨요, 발효시켜서 익혀 먹도록 한 것은 김치 담그던 솜씨가 아니겠는가? 다 재래에 있어온 법이다. 요는 이것이 따로 나지 않고 완전동화 되어 충분히 익어야 하고 싱싱하고 얼근한 맛이 구미를 돋구도록 염담鹽膽을 잘 맞추어야 한다. 음식의 염담이란 맛의 생명이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인의 구미에 상하 귀천 없이 기호에 맞은 것이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격식이 문제 아니요 유래가 문제 아니다. 이름이야 무엇이라 해도 좋다. 신선로神仙爐니 탕평채蕩平菜니 두견화다杜鵑花茶니 가증스럽게 귀한 이름이 필요 없다. 깍두기면 그만이다. 이 깍두기가 반상(정식) 오첩에 올라 어육魚肉과 어깨를 나란히 하되 오히려 중앙에 놓이게 된 것이요, 위로는 궁중 사대부가士大夫家로부터 일반 빈사貧士 서민에 이르기까지 애호를 받고 있는 것이다.

  C군은 영리한 사람이다. "선생님, 지금 깍두기를 빌어 수필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지요. 수필의 소재는 우리 생활 주변에 있고 다시 평범한 데 있는 것이요, 신기하고 어려운 데 구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러나, 무가 싱싱하고 단 무라야 깍두기 맛이 나지 썩은 무나 시든 무야 되겠나." "그것은 글의 품위에 관계되겠지요. 청신하고 진실한 것으로 깊이를 찾을 수 있는 것이라야 되겠지요." "이름이야, 소품小品이라고 하든 에세이라고 하든 잡문이라고 하든 상관할 바 아니지요. 나는 내 글을 쓰는 것이니까요. 어느 이름에 구애될 필요는 없지요. 어느 형식이나 유파에 따를 필요도 없지요. 오직 파격이 필요하지요. 램의 수필이 어디까지나 환상적이요, 정서적인가 하면, 노신魯迅의 수필은 정열적이요 혁명적이었고, 주자청朱自淸의 수필이 서정적이요 미문적이었다 하면 프루스트의 수필은 사색적이요 내심적이었거니와 그들의 수필을 기준으로 할 아무 필요도 없으니까요. 서구적인 저널리즘이 칼럼니스트들을 수필 문학가라 하고 한편에서는 서투른 작문을 수필 명작이라고 떠드는 것을 추종할 필요도 없지요. 그러나 남들이 내 글도 수필이라고 불러 준다면 그런대로 받아들여 족하고요. 다만 읽어서 싱싱하고 얼근한 깍두기 맛만 낸다면 소설 시와 같은 문학들과 함께 오첩 반상에, 오히려 중앙을 차지하게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지금 말씀하시던 중 무를 숭덩 숭덩 썬 것이 무법인 듯 하되 곰국 건지 썰던 법이요 운운하시던 말씀인데 수필에서 그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는 없을까요?" "자네가 내 말을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니까 좀 무서우이마는 수필에 정서가 흐르는 것은 서정시에서 빌어온 법이요, 수필에서 서술이 긴박하고 빈틈 없이 나가는 것은 단편 소설에서 빌어온 법일세. 설리說理는 평론의 수법에서, 묘사는 배경 소설의 수법에서, 독자에게 친절감을 잃지 않는 것은 저명한 서간문의 수법에서, 사색적이요 반성적인 것은 저명한 일기문의 수법에서, 문장의 활기 있는 긴장은 희곡의 수법에서, 문단과 문단이 갈릴 때마다 청신淸新한 전환은 시나리오의 씬을 바꾸는 솜씨에서 자유자재로 섭취 활용해 가며 자기의 독특한 문체와 참신한 문태文態를 창조해 나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드러나거나 의식적인 기교에 지나치거나 익지 아니한 날내가 나면 그 글은 원숙한 글이 아닌 것일세."

  "음식의 맛의 생명은 염담 맞추기에 있다고 하셨는데 문장에서 염담이란 무엇에 해당됩니까?" "문장의 농담濃淡이지. 문장의 농담이 없으면 정물화靜物畵에 음영陰影 없는 것과 같고, 음악에 박자 없는 것과 같지. 문장은 이 농담에 의해서 함축도 있고 여운도 있고 기환奇幻도 있고 내재적인 리듬도 있어 비로소 시취詩趣를 갖게 되는 것일세. 고인이 농담없는 문장을 가리켜 몰골도沒骨圖라고 풍자한 이가 있어. 우리 모양으로 문장이 미숙하고, 또 배워 보려는 사람들은 이 깍두기에서 얻는 바가 있을 것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