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 필사 +

피라미드의 받침돌 하나가 / 변해명

칠부능선 2012. 4. 12. 01:12

피라미드의 받침돌 하나가

변해명

 

메밀꽃 하면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떠올리고, 국화 하면 미당 서정주의 시 <국화옆에서>를 떠올린다. 그래서 소설가 이효석의 고향 봉평은 가을이면 메밀꽃으로 덮여 있고, 그 꽃을 보며 사람들은 소설 속의 메밀꽃을 이야기한다. 시인 서정주의 무덤가에는 노란 국화꽃으로 뒤덮여 있다고 하는데, 그곳에선 사람들도 시 <국화옆에서>를 읊으며 미당의 국화꽃을 이야기 할 것이다. 그들이 남긴 작품이 한둘이 아니지만 유독 그 한 편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독자들에게 작품이 주는 감동과 공감하는 정서가 보편성을 지녀서일 것이다. 또한 모두가 오래도록 기억한다는 것은 그 작품이 독자에게 많이 사랑을 받아서 작가의 대표작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독자는 책을 읽으며 스스로 작가가 되어(독자의 상상력) 미완의 여지를 찾아내어 스스로 메꾸어 나가려고 한다. 작품을 작품답게 만들어 가는 것은 작가가 쓰는 글이되 그 자리에 독자들이 참여하여 작품의 세계를 자신의 세계로 확장하고 생략된 부분을 완성시켜 가는 것이어서 거기에는 필자와 독자가 공유하는 심상의 통일과 정서의 흐름이 일관되게 이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화가 앤디 워홀처럼 마리린 먼로의 얼굴만 그려서 전시를 해도 그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녀의 얼굴의 입술만을 바라보면서도 그녀의 관능적인 전신(全身)과 성적인 매력까지도 자신들의 상상력으로 채워나갈 수 있게 그려진 것처럼 글도 그런 생략과 압축된 여지를 독자들이 자신들의 상상력으로 채워나갈 수 있는 여백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글을 쓰면서 가끔은 그런 글을 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지금까지 내가 쓴 글이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 있나 살펴보고 글을 쓰는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그 작품이 좋았어요” 독자로부터 그런 말을 들을 때에는 천하라도 얻은 것처럼 기쁘고 신명이 나기도 하지만 “글이 다른 글에 비해 못한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글을 쓸 자질이 있는가? 하면서 부끄럽고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 ‘남은 그렇게 잘 쓰는데, 나는 왜 그렇게 못 쓰는가?’ 그런 좌절은 글을 쓰는 사람을 스스로 비참하게 만든다.

피라미드의 맨 윗돌 하나를 올려놓기 위해서 무수히 많은 돌들이 받침돌이 된다는 생각을 해본 일이 있는지.

우리가 말하는 대표작은 그 작가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뽑힌 하나를 말하는 것이요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맨 위의 돌은 많은 받침돌이 없이는 오르지 못한다는 것도, 모두가 단 하나인 상좌의 돌이 된다고 하면 피라미드는 만들어지지 못할 것이다. 그 하나의 돌을 얹기 위해 우리는 많은 밑돌을 쌓아가야 한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주춧돌을 튼튼하게 놓아야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듯 우리가 쌓아가는 밑돌은 다듬고 다듬어 튼튼해야 한다.

아직 독자의 입에서 회자되는 작품은 아니더라도 그런 작품을 쓰기 위해서 노력하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수필의 본질을 알고 써야 할 것이다.

수필을 쓰는 우리가 거듭 생각해야 할 것은, 언어예술로서의 수필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작가의 체험(주제)은 작가의 정서 속에 녹아 있어야 하고, 작가의 상상은 독자의 상상과 감정 정서에 호소되어야 하며, 독자의 상상을 환기시키고 감정을 자극하여 독자를 감동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수필쓰기가 다만 이야기를 알리고 전달하는데 있다면 독자는 감동하지 않는다. 감동이 없는 글이란 한낱 말장난에 불과하며 전달의 목적이 있다면 굳이 수필이란 문학양식을 통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어떤 소재나 주제로 글을 쓰든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진실과 그 진실의 영속성에 매이게 됨을 생각하고 피라미드의 마지막 윗돌을 찾아내기까지 글의 탑을 쌓아 올려야 할 것이다.

30여 년간 써온 내 글, 한 편의 대표작을 고르라면 어느 작품이 될까? 마지막 윗돌을 찾아내기 어려울 것 같다.

 

변해명 테마에세이《우주목과 물푸레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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