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 필사 +

봉필이(2006.3.27~2012.6.14) / 임철순

칠부능선 2012. 6. 16. 14:47

봉필이(2006.3.27~2012.6.14)

2012.06.16

임철순

 


봉필(蓬馝)이가 결정적으로 이상 증세를 보인 것은 5월 16일 새벽입니다. 큰아들 방 침대에서 뛰어 내리다 다친 듯 봉필이는 그날 왼쪽 앞 다리를 말아 올린 채 뭔가 호소하는 눈빛으로 문간에 서 있었습니다. 언제나 먹을 걸 다 먹고 더 먹고 또 먹던 녀석이 밥도 잘 안 먹고, 축축해야 할 코가 말라 있는 데다 벌벌 떨기까지 해 병원에 데려가 검진을 받게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진단 결과 봉필이는 빈혈에 만성신부전증, 담낭염, 복막염 초기 등등 완전 종합병원이어서 바로 입원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2주 만인 29일 퇴원한 후에도 별로 상태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끝에 더 이상의 병원 치료를 포기하고 6월 9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우리 가족은 고통스러워하는 녀석을 이제 그만 떠나보내기로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고별 산책이라고 생각하며 우리가 자주 함께 걸었던 아파트 옆 산에 갔을 때 봉필이는 아프지 않은 녀석처럼 제법 잘 돌아다녔습니다. '이런 애를 어떻게 죽이나.' 마지막으로 내 친구가 운영하는 동물병원에 찾아갔습니다. “상태가 좋지 않지만 한 열흘 치료해 보자”는 친구의 말에 따라 주사액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이 낮과 밤을 번갈아 지키는 동안 봉필이는 하루하루 시들어갔습니다. 사료는 물론 물도 먹지 못해 품에 안고 입 안에 물을 주사해 주어야 했습니다. 제대로 앉거나 서지 못하면서도 봉필이는 한사코 기다시피 화장실에 가 오줌을 누고 피똥을 쌌습니다. 아무데나 똥오줌을 싸면 안 된다는 스트레스가 그 동안 얼마나 컸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죽음이 임박해서는 자꾸만 더 시원한 곳 구석진 곳으로 숨으려 하고, 거실 여기저기에 한두 방울 피똥을 싸거나 토했습니다. 집안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했습니다. 그러다가 서울이 가장 더웠던 14일 낮, 몸 안의 것들을 모두 토하고 싸서 내보낸 다음 고별하듯 이 방 저 방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리고는 아파트 현관의 신발장 밑에 들어가 코를 고는 것 같은 소리로 가쁜 숨을 한동안 몰아쉬더니 결국 떠나갔습니다. 탈진할 대로 탈진한 탓인지 소리를 지르거나 몸부림을 치지도 않고 의외로 평온하게 숨졌습니다.

봉필이가 우리 집에 온 것은 태어난 지 3개월 여 만인 2006년 6월 8일이니 6년 남짓 우리와 함께 산 셈입니다. “개들의 유일한 허물은 오래 살지 못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같은 슈나우저인데도 열 몇 살씩 사는 녀석도 있는데 봉필이는 다른 개들에 비해서 너무도 빨리 갔습니다. 평균수명도 채우지 못한 요절입니다.

봉필이를 치료하는 동안 절실하게 느낀 것은 반려동물 진료비 문제입니다. 개는 건강보험 제도가 없는 데다 사람과 달리 진료비에 부가세까지 내게 돼 있어 비용이 많이 듭니다. 이제는 반려동물 기르는 것을 사치라고 할 수 없는데도 정부는 한사코 부가세를 거두고 있습니다. 반려동물 사육자들의 반발에 비하면 국가수입은 미미합니다. 중산층과 서민층의 세금 부담만 가중시키는 제도입니다. 사람들이 왜 병든 개를 고쳐주지 않고 버리는지 이번에 그 이유를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렇게 버려진 개들이 한 해에 10만 마리 가깝다는데, 유기견을 안락사시키거나 재입양하는 일은 사회의 큰 부담거리가 돼 버렸습니다.

봉필이가 떠난 6월 14일은 공교롭게도 '제 1회 유기동물 입양의 날'이었습니다. 반려동물의 입양을 권장하는 이 캠페인의 구호는 “미안해 고마워”입니다. 왜 미안하고 고마운가? 고마운 것은 개가 인간과 동물, 인간과 인간의 사랑과 교감을 알려주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얼굴을 핥아주는 강아지 만한 정신과 의사는 없다.”(미국 배우 벤 윌리엄스), “개는 신사다. 나는 개들이 가는 천국에 가고 싶다. 인간들이 간다는 그 천당 말고.”(마크 트웨인), 이런 말이라든지 누가 한 것인지 모르지만 “내 삶의 목표는 내 개가 나에 대해 여기는 만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말은 모두 개의 사랑과 미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미안한 것은 인간이 개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봉필이가 그렇게 아픈 줄 우리 가족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미국의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로렌 맥콜이 쓴 책 <영원한 선물>에는 저 세상으로 간 개들과의 대화가 많이 실려 있습니다. 그녀가 옮긴 개의 말에는 ‘엄마’와 함께 산책을 다녔던 행복을 회고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아내는 이 책을 읽고 난 뒤부터 봉필이를 데리고 고덕천 산책길을 자주 걸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아픈 애를 아무것도 모르고 멀리 끌고 다녔다”고 자책하고 있습니다.

봉필이가 아무것도 먹지 못하자 아내는 묽은 미음을 만들어 주사기로 입에 넣어 주었습니다. 그것도 잘 삼키지 못하더니 죽기 3시간쯤 전에 내가 먹일 때는 의외로 다섯 주사 분량을 먹었습니다. 내 친구가 “자꾸 토하면 (마지막이니) 데려오라”고 했는데도 잘 먹는 것만 좋아했는데, 봉필이는 자꾸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초점 없이 치켜 뜬 눈은 나에게 “세상을 그만큼 살고도 사려와 분별이 그렇게도 없느냐”고 탓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도 나는 미안합니다.

그 녀석의 주특기는 '발라당'이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발라당!" 하면 얼른 드러누웠고, 내가 배를 긁어주는 걸 좋아했습니다. 먹성이 좋고 사교성이 풍부했던 봉필이는 잠시도 가만있지 못할 만큼 부산스러웠습니다. 아무나 잘 따라서 우리는 “저건 도둑놈이 와도 짖기는커녕 얼른 따라갈 거야.”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식탁에 올라가지 못하게 의자를 반대로 돌려 놓는데도 의자를 밀고 갔는지 어떻게 했는지 기어코 식탁에 올라가 음식을 먹어치우고, 피자 조각을 베란다의 화분 옆에 감춰 놓기도 했던 녀석입니다. “식탁에 어떻게 올라가는지 CCTV로 찍어서 봐야겠다”는 말도 했지만, 봉필이는 사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진종일 혼자 외로웠을 것입니다.

1970년대에 읽은 어린이교육자 이오덕(1925~2003) 선생의 저서 <일하는 아이들>에 ‘아버지의 병환’이라는 시가 있었습니다. ‘우리 아버지가/어제 풀 지로 갔다./풀을 묶을 때 벌벌 떨렸다고 한다./풀을 다 묶고 나서/지고 오다가/성춘네 집 언덕 위에서 쉬다가/일어서는데/뒤에 있는 독맹이에 받혀서/그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풀하고 구불어 내려와서 도랑 바닥에 떨어졌다./짐도 등따리에 지고 있었다./웬 사람이 뛰어와서/아버지를 일받았다./앉아서 헐떡헐떡하며/숨도 오래 있다 쉬고 했다 한다./내가 거기 가서/그 높은 곳을 쳐다보고 울었다.’1969년 안동 지역 초등학생이 쓴 시의 전문입니다. 봉필이는 죽은 당일에 화장했고, 그 녀석의 물건도 다 남에게 주거나 버려서 남은 게 없는데도 봉필이가 잘 앉던 자리나 집안 여러 곳을 볼 때 이 시가 저절로 생각납니다.

봉필이가 살아 있을 때 대문에 벨이 울리면 개가 뛰쳐나가 찾아온 사람을 놀라게 할까 봐 우리는“봉필이 잡아!” 그러곤 했습니다. 14일 밤에 벨이 울릴 때, 아내는 이미 있지도 않은 봉필이를 잡아 두려 했습니다. 아내는 “봉필아, 미안해 미안해. 이 다음엔 꼭 말하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라고 울고 있습니다. 아들도 수시로 울고 있습니다. 우리 집은 지금 忌中(기중)입니다.

필자소개

임철순

1974년부터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을 역임했다.
현재는 이사대우 논설고문으로 일하며 '임철순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산문 - 필사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요 할머니, 안녕!  (0) 2013.01.25
깍두기설 / 윤오영  (0) 2012.10.03
피라미드의 받침돌 하나가 / 변해명  (0) 2012.04.12
못생긴 돌 / 자핑아오  (0) 2012.04.09
'선생님'과 '교수님' / 서의식  (0) 2012.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