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감자 / 안도현 삶은 감자 / 안도현 삶은 감자가 양푼에 하나 가득 담겨 있다 머리 깨끗이 깎고 입대하는 신병들 같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중이다 감자는 속속들이 익으려고 결심했다 으깨질 때 파열음을 내지 않으려고 찜통 속으로 눈을 질끈 감고 익었다 젓가락이 찌르면 입부터 똥구멍까지 내주고, 김치가 머리.. 시 - 필사 2006.07.19
봄밤 / 김사인 봄밤 / 김사인 나 죽으면 부조돈 오마넌은 내야 도ㅑ 형, 요새 삼마넌짜 리도 많던데 그래두 나한테는 형은 오마넌은 내야도ㅑ 알 었지 하고 노가다 이마무개(47세)가 수화기 너머에서 홍시 냄새로 출렁거리는 봄밤이다. 어이, 이거 풀빵이여 풀빵 따끈할 때 먹어야 되는디, 시인 박아무개(47세)가 화통 .. 시 - 필사 2006.07.18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 황동규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 황동규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의 바퀴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가쁜 언덕길을 오를 때 자동차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길 속에 모든 것이 안 보이고 보인다, 망가뜨리고 싶은 어린 날도 안 보이고 보이고, .. 시 - 필사 2006.07.15
그 옛날의 사랑 / 오탁번 그 옛날의 사랑 / 오탁번 지붕 위에 널린 빨간 고추의 매운 뺨에 가을 햇살 실고추처럼 간지럽고 애벌레로 길고 긴 세월을 땅 속에 살다가 우화 (羽化) 되어 하늘을 나는 쓰르라미의 짧은 생애를 끝내는 울음이 두레박에 넘치는 우물물만큼 맑을 때 그 옛날의 사랑이여 우리들이 소곤댔던 정다운 이야.. 시 - 필사 2006.07.15
學 樂 '애정, 너는 대체 무엇이길래 나를 이처럼 괴롭히니, 또 사람은 너를 도외시하고는 복락의 길을 얻을 수 없단 말이냐, 우리의 꽃다운 목숨을 통째로 바쳐도 아깝지 않을 만치 그다지 존귀한 것이냐' '날 그리다 죽은 사람, 날 죽게 하는 님은 없는가.’ 굶은 짐승과 같이 고요하려하지 않는 애욕. 자유로.. 놀자, 책이랑 2006.07.12
기항지 1 / 황동규 기항지 1 / 황동규 걸어서 항구에 도착했다. 길게 부는 한지(寒地)의 바람 바다 앞의 집들을 흔들고 긴 눈 내릴 듯 낮게 낮게 비치는 불빛. 지전(紙錢)에 그려진 반듯한 그림을 주머니에 구겨넣고 반쯤 탄 담배를 그림자처럼 꺼버리고 조용한 마음으로 배 있는 데로 내려간다. 정박중의 어두운 용골들이 .. 시 - 필사 2006.07.12
즐거운 편지 / 황동규 즐거운 편지 /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 로움 속으로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 시 - 필사 2006.07.12
풍장27 / 황동규 풍장27 / 황동규 내 세상 뜰 때 우선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입을 가지고 가리. 어둑해진 눈도 소중히 거풀 덮어 지니고 가리. 허나 가을의 어깨를 부축하고 때늦게 오는 저 밤비 소리에 기울이고 있는 귀는 두고 가리. 소리만 듣고도 비 맞는 가을 나무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귀 그냥 두고 가리. 시 - 필사 2006.07.12
참을 수 없을 만큼 / 황동규 참을 수 없을 만큼 / 황동규 사진은 계속 웃고 있더구나 이 드러낸 채. 그 동안 지탱해준 내장 더 애먹이지 않고 예순몇 해 같이 살아준 몸 진 더 빼지 않고 슬쩍 내뺐구나! 이 한 곳으로 생각을 몰며 아들 또래들이 정신없이 고스톱 치며 살아남아 있는 방을 건너 빈소를 나왔다. 이팝나무가 문등(門燈).. 시 - 필사 2006.07.12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 서정주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 서정주 외할머니네 집 뒤안에는 장판지 두 장만큼한 먹오딧빛 툇 마루가 깔려 있습니다. 이 툇마루는 외할머니의 손때와 그 네 딸들의 손때로 날이날마다 칠해져온 것이라 하니 내 어 머니의 처녀 때 손때도 꽤나 많이 는 묻어 있을 것입니다 마는, 그러나 그것은 하도나 많.. 시 - 필사 2006.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