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 10

번개, 월하오작

그야말로 번개로 다섯명 모두 모였다. 미금 '택이네'를 갔는데, 이젠 이런 음식을 속에서 밀어낸다. 소맥도 예전 처럼 들어가지가 않는다. 몇 잔 못 마시고 연신 잔만 부딪쳤다. 이제 병들고 늙음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웃으면서 하는 노인 준비,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이들의 허심한 마음이다. 설렘이 없다고 한탄하는 ㅅ낭자, 많이 약해졌다. 그래도 음악에세이를 연재하며 음악과 함께 노니 다행이다. 초딩이 된 손자가 학원다니느라 맘대로 못 본다고 푸념하는 ㄱ씨, 딸들이 바빠서 이제 부부 중심으로 돌아갔다는 ㄱ샘, BTS에 빠진 엄마를 비난하는 작은 아들이 야속한 ㅊ샘. 소소한 일상이 눈에 훤히 그려진다. 아, 나도 다시 아기짓을 하는 어르신때문에 속이 좀 상했다. 수내교, 서현역 사건으로인해 가..

차마고도 외전外傳 / 조현석

조현석 시인 63년생, 회갑이다. 다시 한 살이라고 한다. 시인 이력 35년에 다섯 번째 시집이다. 를 만난 게 벌써 5년 전이다. 6년 전 을 만들며 출판사 대표로 만난 그는 스스로 '일머리'가 있어서 몸으로 하는 일을 잘 한다고 했다. 일머리 없는 사람과 사는 나는 경이롭게 바라봤다. 늘 웃는 얼굴이다. 씩씩하다. 아침마다 일산 호수공원 '닥치고 걷기'를 한 후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고 페이스북에 하루를 연다. 황당한 뉴스는 시인을 화나게 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나는 반갑다는 인사로 '좋아요'를 슬며시 누른다. 시 에 그의 일상이 훤히 그려진다. 이번 시집은 명료하다. 이렇게 단방에 다가오는 시가 좋다. 단숨에 읽었다. 특히 4부 가족사를 다룬 시에서 몇 번 울컥, 했다. 진정성 이상..

놀자, 책이랑 2023.08.27

백권대학 / 김갑수

바코드가 없는 1002쪽 짜리 특별한 책이다. 수필반 김 선생님이 건넸다. 단숨에 못 읽고 닷새 동안 읽었다. 자주진보세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서언'을 읽는 데 인내심이 필요하다. 저자 말대로 주관적인 '책 에세이'다. 그것도 자주진보세력의 편중된 독서가 안타까워 그들을 위한 교육용이라는 것이다. 서언을 지나면 공감대가 확~ 넓어진다. ​ ​ ​ * 편중된 독서는 편중된 인격을 만든다. 뿐만 아니라 사람과 역사와 시대에 대한 면역력과 적응력을 떨어뜨린다. 요컨대 무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무능한 사람은 제 아무리 순수하고 열정적이더라도 역사를 바꾸는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는 기껏 해야 추종자나 하수인에 머무를 따름이다. (12쪽) ​ * 최부는 제주도에 부임한 후 몇 달 안 되어 부..

놀자, 책이랑 2023.08.21

부~ 자 느낌

6시 50분, 출발 여주 농장에 갔다. 이른 시간이라 씽~ 달려서 좋다. 오랜만에 간 농장은 울창해졌다. ​ 김농부는 고추를 씻고 있다. 깨끗한데 4번을 씻는다. 그리고 앞집 건조기에 갖다 넣는다. ​ 앞집 개는 여기 와서 놀고 밥먹고 새끼도 낳았다. ​ ​ 고구마줄기가 탐나지만 여기 손 갈 시간이 없다. ㅠㅠ ​ ​ ​ ​ ​ ​ ​ ​ 요즘 이 수세미로 설겆이를 하는데 느낌이 참 좋다. 저것이 수세미가 되는 과정이 또 손, 손, 손 가는 일인데... 앉아서 얻어 쓴다. ​ ​ 이 부지런한 김 농부님 덕으로. ​ ​ ​ 가을 무 씨앗이 자라고 있다. ​ ​ ​ ​ ​ ​ 요건 아기사과다. ​ ​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오는 길에 시누이네 들러 조금씩 덜어주고 왔다. 냉면과 짜장면을 얻어 먹고. 여기저..

증손, 첫 대면

친정 장조카의 딸이 아기를 낳았단 소식 들은 게 한참 전이다. 그러니까 내게 친정의 증손인거다. ㅋㅋ 조카가 사위를 데리고 와서 우리 아들과 만나기로 했는데 가깝다고 온 식구가 따라 나섰다. ​ 오늘 들은 이야기 중 남는 것은 조카 손녀의 시할아버지는 97세인데 미국에 사는 큰아들네를 혼자 다니신단다. 비지니스석 타신지도 몇 해 안된다고 한다. 한 계절씩 오가며 사신단다. 증손을 보러도 다녀가셨다고 한다. 집 앞에 칼국수를 먹으러 가실 때도 옷을 딱 챙겨입고 가신단다. 100세 시대를 절감하며 배울 점이 많다고 끄덕였다. ​ ​ ​ 40일된 희노의 첫 나들이. 아기는 피어나는 기운이다.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주 2일씩 다니며 봐준단다. ​ 외할머니인 조카며느리는 말을 쉬지 않는다. 옹알이를 유도하고 옹알..

대문 바깥 / 이부림

작품으로만 만난, 일면식 없는 대선배님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같은 장소에 몇 번은 함께 있었다. 현대수필 윤교수님과의 인연이 눈에 선하다. 제1회 '산귀래 문학상' 시상식장의 모습이 자세히 그려있다. 그 곳에 청바지와 흰 셔츠 차림의 60여 명의 차림 중에 내가 있었다. 윤교수의 미수기념으로 쓴 글이다. 찾아보니 1000쪽이 넘는 미수문집 423쪽에 있다. 지금 윤교수님 건강 상태를 생각하니 마음이 찌르르 하다. 임선희 선생님 문하라니 임선희 선생님 생전에도 만난 적이 있을텐데... 아니면 장례식장에서라도. ​ 이부림 선생은 슬하에 4남매를 두고 손자녀 8명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유복하다. 전세대에 당연하던 일이 지금은 더없이 복된 일이 되었다. 다정한 눈길, 따뜻한 감성이 잔잔하게 흐르는 일상이다. ..

놀자, 책이랑 2023.08.14

반 한 칸의 우주 / 박기숙

박기숙 선생님의 두 번째 수필집이 나왔다. 여든에 수필세계에 입성하셔서, 이제는 방 한 칸에서 우주를 그리신다. 2011년 큐슈문학기행에서 만난 인연으로 연락을 하고 있었다. 새 작품을 쓰면 내게 보내주시고, 잡지에서 내 수필 발표한 것을 읽으시면 감상도 전해주신다. 꽃누르미 스텐드와 부채를 여러번 선물 받았다. 꽃마다 뜻을 담은 손수 만든 작품을 받고 몹시 황송했다. 그때마다 힘이 없어서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말씀도 여러번 하셨다. 그러나 아직 건재하시다. 요즘은 주로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고 사진도 보내신다. 우리 나이로 95세다. 고운 모습도 여전하시다. 우러러 경의를 보낸다. ​ ​ ​ * 1929년 일제하 아버님은 바쁘셨는지 태어난 지 사흘 후에 갓난아기를 보러 오셨다. “계집애가 이리 입이 크냐?”..

놀자, 책이랑 2023.08.12

끙끙, 피서

이탁오를 다시 잡았다. 전에 4권을 읽고 라는 편지글 형식으로 쓴 적이 있다. 그때는 내 흥으로 썼는데 지금은 숙제로 다시 읽는다. 권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수가 없다. 아들을 준 것 같기도 하고... '이탁오와 불교'를 이어봐야 한다. ​ ​ ​ 이것이 내 8월 피서다. ​ ​ * 어떤 사람이 만나기를 청하자, 탁오가 물었다. "당신은 성인이 되려고 하십니까?" 그 사람이 겸손의 말을 하고 있는데 탁오가 말했다. "성인도 무슨 특별히 다른 점이 없어요. 보통 사람들은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성인은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일 뿐이지요." (평전 445쪽) ​ * 세상에서 정말로 문장을 잘 짓는 사람은 모두 처음부터 문장을 짓는 것에 뜻이 있지 않았다. 그저 가슴속에 형용하지 못..

놀자, 책이랑 2023.08.08

오우가, 8월

한 달에 한번 만나는 비주류 고딩친구 다섯. 오늘은 완전체다. 가정법원 조정일을 하고 있는 친구는 아직도 일이 많다.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이야기는 모두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다.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다. 97세 시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친구에게도 칭찬 박수를 보낸다.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늦게 합쳤으니 그나마 다행인건지. 무던한 성격이라 묻지 않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지금 자임과 내가 제일 자유롭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일이 돈이 되지 않을지라도 당당(?)하게 산다. 그도 나도 처음부터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아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때는 몰랐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걸 또 느낀다. ​ ​ 요한성당 근처에 김치짜글이가 맛있는 집이라고 자임이 데려갔다. ​ ​ 모듬고기와..

계곡 놀이

서울둘레길 걷는 날인데 폭염으로 잠시 미루고 청계산 계곡에 갔다. 수필반 많은 분이 참석했다. 김 선생님은 토요일에 답사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음식준비도 넘치게 해왔다. 참으로 고맙다. 청정지역이다. 분당에서 가까운 것도 좋고, 사람이 많지 않아서 또 좋다. ​ ​ ​ ​ ​ ​ ​ ​ ​ ​ 계곡에서 노는 동안 나는 이 길을 걸었다. 슬리퍼를 신고도 걸을 수 있는 편한 길이다. ​ ​ ​ 내려오는 길에 보니 쥔장은 없고 이쁜 애들만 줄을 서 있다. ​ ​ ​ 청계산 입구 몽촌토성에서 오리고기와 돼지고지 숯불에 구워... 배 부르다고 했지만.. 맛있게 먹고 누룽지까지 시켜서 또 먹고.. 계곡 놀이는 먹기 놀이였다. ​ ​ 겨우 챙긴 오늘의 성과. ㅋㅋ ​

낯선 길에서 2023.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