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백권대학 / 김갑수

칠부능선 2023. 8. 21. 08:45

바코드가 없는 1002쪽 짜리 특별한 책이다.

수필반 김 선생님이 건넸다. 단숨에 못 읽고 닷새 동안 읽었다.

자주진보세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서언'을 읽는 데 인내심이 필요하다.

저자 말대로 주관적인 '책 에세이'다. 그것도 자주진보세력의 편중된 독서가 안타까워 그들을 위한 교육용이라는 것이다.

서언을 지나면 공감대가 확~ 넓어진다.

* 편중된 독서는 편중된 인격을 만든다. 뿐만 아니라 사람과 역사와 시대에 대한 면역력과 적응력을 떨어뜨린다. 요컨대 무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무능한 사람은 제 아무리 순수하고 열정적이더라도 역사를 바꾸는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는 기껏 해야 추종자나 하수인에 머무를 따름이다. (12쪽)

* 최부는 제주도에 부임한 후 몇 달 안 되어 부친상 소식을 접하고, 무리한 도해 중 폭풍을 만나 중국으로 표류해 간다. 그의 견문록은 이후 6개월 동안의 여정을 담고 있다. 그는 이미 엄청한 독서와 집필로 막대한 지적 체험을 축적해 놓고 있었다. 그가 중국에 간 것은 35세 때였다.

....

<표해록>은 중국에 관한 많은 기록 중 하나다. 그의 우수한 이념과 천부의 재능과 박람한 학식을 보여주고 있다. (21쪽)

* 프랑스의 역사가 쥴 미슐레는 <프랑스혁명>의 저자다. 그는 "영국은 제국이고 독일은 민족이며 프랑스는 개인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70쪽)

*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하다> 저자는 도덕적 잣대로 역사를 보는 일이 빚어내는 오류와 편견을 지적하면서 "역사에서 도덕은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고 주장한다.

...

측천무후처럼 악녀로 알려진 인물도 그다지 부정적으로 기술되지 않는다. ...

그녀는 아들을 죽이고 어머니를 독살한 악녀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용모와 담력과 식견을 두루 갖춘 여자다. 그녀는 말馬을 길들이는 데에는 3가지만 있으면 족하다고 했다. 채찍과 철봉과 비수라는 것이다. 채찍으로 다스리고 철봉으로 때리고 그래도 길들여지지 않으면 비수로 목줄을 따 버리면 된다고 했다. 특무대를 조직하여 밀고를 받는 방식의 공포정치를 시행했다.

그녀는 60세가 넘어서 설회라는 미남자를 총애하여 그에게 중이 되라고 명한 후, 출가자 신분으로 궁중에 출입시켰다. ....

황후로 28년, 황태후로 7년, 황제로 15년 동안이나 대륙을 호령하며 숱한 남성들을 쥐락펴락 했던 그녀는 80세에 이르자 통탄하듯이 선언했다.

"여자의 몸으로 황제가 되었는데 어찌하여 남자 첩을 두지 못한단 말인가?" (76쪽)

* 문명이 원시성을 계몽하는 게 아니라 원시성이 문명을 순화, 포용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

...

로빈슨 크루소를 한 방에 엎어버린 프랑스 작가 미셀 투르니에의 소설 <방드리디, 태평양의 끝>,

이 소설은 서구 문명에 대한 격조 높은 비판에 성공한 작품으로 꼽힌다. 이웃 경쟁국의 국민 작가를 '아티스틱'하게 무장해제시키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프랑스 문단은 이 작가에게 프랑스 권위의 프앙세즈 문학상을 주었고, 후속작 <마왕>에는 콩쿠르 상을 하나 더 주었다. (85쪽)

* <삼봉 정도전>

삼봉은 고려 말 최고 권력자로 부상하고서도 정치보다는 혁명을 추구했고, 조선 건국 후 만인지상의 재상 자리에 올랐을 때에도 역시 정치보다는 혁명을 실천하려 했다. 삼봉이 이루고자 했던 정치는 절저한 민본정치였으며 그가 해내고자 했던 토지개혁은 오늘날의 토지 국유제에 가까운 혁명적 발상이었다. (96쪽)

* 노자는 "나는 누구의 아들인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 말은 직선사관을 거부하는 발언이자 자기 자신을 자연의 한 파편으로 간주하는 만물 평등적 가치관의 피력이다. 이렇게 절대적 권위나 실재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노자철학은 대승불교와 함께 동양문명의 양대 보편주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130쪽)

* <이카로스의 감옥>

" 태양은 거침없이 이카로스를 공격했다. 그의 날개는 아직 태양열을 견디기에는 너무 약했다. (135쪽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 문영심은 해산된 통합진보당을 그리스 신화의 이카로스에 비유한다. ...

여기에는 진보연하는 진중권, 임미리 등의 발언이 얼마나 편파적이고 근시안적이었는지, 유시민, 심상정 등의 정치인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교묘한지를 말하는 대목도 있다. 또한 국정원과 검찰과 법원이 얼마나 황당한 짓을 했는지. 프락치 이성윤이 어떻게 돼먹은 인간인지를 한눈에 알아보도록 설명하는 대목도 있다. (146쪽)

* 자기 사생활을 이토록 까발린 기행문을 읽어본 적이 없다. ...

스스로 자기를 '뿌리 없는 풀' 이라고 비하했던 유미리가 조선에서 발견한 것은 놀랍게도 '빛'이었다.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을 휩쓸다시피 한 이 주도면밀한 이야기꾼은 글의 서두에 자기의 조선 방문은 사실 관광이나 다름없다고 하면서도 '관광'이 내포하는 엄청난 의미를 입증하기 위해 <주역>을 인용해 놓았다. 광광이란 '관국지광' 즉 '나라의 빛을 본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유미리는 조선에 가면 방의 커튼을 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녀는 "잠이 깨어 침대에서 맨발로 내려와 창가로 가니, 공기 자체가 빛을 발하며 새로운 하루를 향해 조금씩 열려 가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서는 "아침 해가 선명한 곳이라는 뜻을 지닌 '조선'이라는 아름다운 나라 이름을 아침 햇살과 함께 가슴 가득 들이마셨다"라고 덧붙였다. (158쪽)

* <돌배게> 장준하의 항일투쟁기

격정적인 성격의 장준하는 독재자 박정희와 유달리 날카로운 각을 세우며 대립했다. ...

장준하는 1974년 1월, 네 번째 구속된다. .... 국민들은 그를 가리켜 '재야 대통령'이라고 일컫게 되었다. 1974년 12월 감옥에서 병이 악화되어 형집행정지로 출감한 장준하는 1975년 포천 약사봉 등반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181쪽)

<장정> 김준엽의 광복군 시절

김준엽은 고려대 교수와 총장을 역임하면서 학자로서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두 사람은 민주. 자유정신만큼은 단 한시도 굴절된 일이 없었다.

" 노 당선자를 그동안 두 번 만났으나 잘 모르겠고, 새 헌법에 따라 전두환씨가 국정자문회의 의장을 맡게 되는데 총칼로 정권을 장악하고 많은 사람을 괴롭힌 그에게 내 머리가 100개 있어도 숙일 수 없고... 민주주의를 외치다 투옥된 많은 학생들이 아직도 감옥에 있는데 그 스승이라는 자가 총리가 될 수 없으며, 지식인들이 벼슬이면 굽실거리는 풍토를 고치기 위해 나 하나만이라도 그렇지 않다는 증명을 보여야 한다." (180쪽)

* <정치가의 언격>

언어는 혁명과 정치의 도구이자 무기다. 사상은 언어에 의해서만 바로설 수 있으며, 좋은 언어에 의거해야 인민을 향해 나아가고 인민을 인도할 수 있다.

1965년 9월 마오쩌둥(1893~1976)은 중앙 서기처 서기 후차오무의 문장을 고쳐 주면서, 진부한 어휘를 쓰지 말고 신조어를 만들어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마오는 "만약 어떤 글이나 연설이 생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언제나 '학생과 같은 말투'로만 쓴다면 그 무미건조하고 보기흉한 꼴이 뜨내기와 흡사하지 않겠는가?" 라고 힐책했다. (246쪽)

* 푸쉬킨은 자유의 신봉자였다. 그는 10대 소년 시절부터 전제황제를 비판하고 자유와 평등을 예찬하는 시들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는 19세에 쓴 시 <자유> 때문에 남부 캅카스 지방으로 유배되었다. 때문에 데카브리스트에 직접 가담하지는 못했다. (485쪽)

* " 러시아의 민중은 자신들의 삶, 억압 받고 학대당하고 추방당하는 삶을 인류 전체에게 알리기 위해 '자신들의 살'로 고리키의 '입'을 만들었다." (오스트리아 익명의 노동자 작가의 말) 이것은 러시아 민중과 작가 고리키의 관계를 비유한 말이다. (488쪽)

* 1964년 10월, ..... 소련 경제의 전성기였다. ... 자본주의 국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한 연금, 보험제도가 시행되었고 12년 무상의무교육과 무료진료체제가 자리를 잡았다.

소련인은 책을 가장 많이 읽는 국민이 되었다. 그러나 경제적 풍요와 사회 안정은 정체와 부패를 낳았다. 소련 사회는 급속히 개인주의적인 폐쇄성을 띠어갔다. 무엇보다도 폐쇄적인 관료체제가 문제였다.

(507쪽)

* 순수를 내세우는 인간의 부류는 세 가지이다. 첫째 무지하기 때문인데 정명훈의 경우가 아닐까 한다. 둘째 인격 자체가 뒤죽박죽으로 혼미하기 때문인데 서정주가 바로 이 경우인 것 같다. 마지막 세 번째는 순수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청치적이기 때문인데, 백남기 선생의 인체를 메스로 유린하여 온갖 자기 이익을 취한 백선하가 바로 이 경우인 것 같다. (560쪽)

* 규장각 학자들의 출퇴근 시간은 하절기 6시 출근 12시 퇴근, 동절기 8시 출근 오후 2시 퇴근이었다.

"손님이 와도 일어나지 말라. 일할 때는 공적인 일이 아니면 미루고 내려가지 마라. 규장각 학자 외에는 아무리 높은 관리도 규장각에 올라갈 수 없다. 일할 때는 옷을 제대로 차려입고 하라" (정조가 규장각에 내린 지침) (577쪽)

* 상앙의 어록 <상군서>

- 지고한 덕을 논하는 자는 세속과 타협하지 않고, 큰 공을 세우는 자는 많은 사람과 상의하지 않는다.

- 지혜로운 자는 법을 만들고 어리석은 자는 법에 구속된다. 현명한 자는 예를 고치고 불초한 자는 예에 구속된다. 법에 제압되는 사람과 변법을 논할 수 없다.

- 나라에 군주를 원망하는 사람이 없으면 강국이다. (622쪽)

* 장자는 임종하면서 제자들에게 자기 시신을 산에다 아무렇게나 던져 놓으라고 일렀다. "나는 천지를 관곽으로 사목, 해와 달을 한 쌍의 구슬로 삼고, 밤하늘의 별을 옥으로 삼고, 만물을 저승길의 선물로 삼을 것이다. 이 정도면 내 장례에 필요한 도구가 다 갖춰진 것이 아니냐? 아예 무엇을 더하려 하는가?"

(682쪽)

* 사람은 서로에 대한 인연으로 묶이는 것이 아니라 늘 처음처럼 낯선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람의 사이는 손님의 관계로 있을 뿐이다. 우리는 손님에게 뭘 요구하지 않고 환대한다. 손님에게 나와 같은 생각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가 손님으로 남아 있을 때 부담도 없고 간섭도 없이 진정한 소통과 연대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장자가 말한 '화도化道' 다.

(686쪽)

* '토사구팽'에 대해서도 법가와 유가의 관점은 다르다. 법가에서는 충성을 다하여 공을 세운 신하를 나중에 처벌하는 것은 군주가 나쁘기 때문이라고 보는 반면, 유가에서는 그들이 군주에 충성하고 공을 세우는 것은 자신의 부귀를 위한 것이고, 거기에 인을 해치는 행위가 있었으므로 토사구팽은 자업자득이라는 논리를 펼친다. (783쪽)

* 중국인들은 우리나라를 군자국이라고 지칭하고 우리나라 사신을 주변 여러 나라 사신 중에서 가장 상석에 배치하면서 극진히 우대했다. 우리나라 통신사가 일본에 가서 국력을 기울일 정도로 후대를 받은 것도 우리가 일본보다 일류국가였기 때문이다. 실로 우리는 20세기 100년을 빼고는 언제나 일류국가로 살아왔다. (892쪽)

* 조선왕조가 비록 일본의 무력에 의해 국치를 당했다 하더라도 침략자를 비난할 일이지 조상을 탓할 일이 아니다. 신사가 불량배에게 맞았다 해서 신사를 나무랄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제는 조선왕조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할 때다. 그것이 우리 역사에 대한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21세기 신문명을 창조하는 활력소가 될 것이다. (894쪽)

* 내 몸의 털 한 올을 뽑아서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 <맹자> 진심장 편에서 인용)

이는 양주가 남긴 말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다. 맹자는 양주의 핵심 사상인 위아爲我, 즉 나를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결국 사람과 짐승의 경계를 허물게 될 것으로 보아 혹독하게 비판했다. 맹자는 양주를 극단적 이기주의자 또는 허용될 수 없는 혹세무민의 사설로 보았던 것이다.

....

한비자는 양주의 사상을 물질의 가치를 가볍게 보고 생명의 가치를 높게 봐야 한다는 뜻의 '경물중생'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한비자의 평가는 맹자의 비판에 비해서 단연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907쪽)

* 안창호는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거사에 연루되어 4년형을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당시 상해에 머물렀던 안창호는 독립운동보다는 순회강연과 이상촌 건설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는 김구의 폭력저항에 늘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래서 김구는 거사 사실을 대부분의 독립투사에게 알려 도피하도록 조치할 때 안창호에게는 사람을 시켜 간접적으로 알렸다. 하지만 안창호는 대비하지 않았다. 그는 일경에 체포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지고 모른다. 그래서 윤봉길 의사 거사 후 김구 일행은 곧장 대피했지만 안창호는 아무 사정도 모른 채 무작정 대피하라는 전달을 무시하고 있다가 엉겁결에 체포된 것이다. (967쪽)

<세기와 더불어> 김일성 회고록으로 100권을 마무리한다.

백권을 소개했지만 책 속의 책까지 찾아본다면 한참 더 많은 책이 나온다.

부록으로 김갑수 자신의 <진보적 글쓰기>와 <진짜조선역사>를 소개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나눠야 하는, 아니 알려야하는, 앞 선 지식인의 사명감이 투철하다.

끄덕이며 공감도 하고, '그랬단 말이야' 하며, 주관적 해석에 아리송한 부분도 많다.

내가 읽은 반가운 책도 만나고, 못 읽은 책이 더 많지만, 그 중에 읽고 싶은 책들을 알라딘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막연히 짐작하던 근현대사가 소상히 흥미롭게 펼쳐있다. 동서양, 역사와 문학과 사회 현상, 사건들의 이면까지 거침이 없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시간과 내가 가보지 못한 나라의 기원과 사연까지. 며칠동안 책이 책을 부르는, 넉넉한 책 잔치에 푹 빠졌다.

챕터 분류 없이 책 백권을 소개했는데, 주제별로 쳅터를 정리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이것도 틀에 길들여진 내 사고일 수도 있겠다. 어쨌건 잘 읽히면 성공인거다.

1002쪽에 주눅 들 필요는 없다. 친절하게도 큰 글씨에 공간도 널널하다.

포스트잇을 붙인 부분은 두 번 읽고, 좀 더 생각하며.... 역사를 이끈, 아니 역사의 뒤편에서 역사를 이루게 한 인물들에게 감사하며, 울컥하는 부분에 다시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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