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것 김민기를 애도함
노정숙
그가 하는 일은 모두 고맙고
미안하기만 하였는데
그는 정작 우리에게
고맙고 미안하단 말을 하고 떠나버렸네
꽉 막힌 시대에 온몸으로 창을 내서
우리 숨통을 열어주었지
시린 마음에 뜨신 기운 넣어준
온통 아름다운 사람
내 다정한 넷째 오빠가 떠난 듯
가슴에 큰 바람구멍이 났네
어린 당나귀 호택
- 임택 <동키 호택>을 읽고
노정숙
뜨거운 햇살
폭우와 폭설을 묵묵히 받으며
등짐 지고 걷는다
등짐이 거칠고 무거워도
그냥, 길을 걷는다
드넓은 초지는 너의 식탁
가끔 먹는 딱딱한 빵은 달콤한 간식
순한 눈빛 아래
강철 같은 고집은 선지자의 기질
위험을 느낄 때 아니고는 무심한 동키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어디서 잘지 걱정 없는 여덟 살 호택
서서 먹고
서서 자는
꼿꼿한 시간이 흐른다
앞뒤로 걷는 순례길에
궁금한 게 많은 예순 살 택씨는
거침없이 해찰하며 여물며
호택을 닮아간다
애틋한 동상이몽
산속 모닥불 곁에서
그의 영혼이
불빛 등진 그림자처럼 커진다
<한국작가> 2024 가을호 (통권 8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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