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꽃잎 한 장처럼 / 이해인

칠부능선 2024. 6. 11. 22:19

깔끔한 하드장전이다.

딸 친구 효영이 한테 선물받은 책이다. 생일책이라고 표지에 써있었다. 고심해서 골랐을 것이다.

효영이는 아들 하나인데 집에 티비가 없단다. 사방이 책이고 학원은 태권도만 보내고 둘이 시간을 보낸다. 아들 민재는 '아줌마'가 다 되었다고 한다. 민재가 좀 더 크면 함께 책을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만인가. 수녀님의 일상을 바라보는 일이...

그런데 그때 그~ 때랑 느낌이 똑 같다. 책을 읽고 시를 쓰고 누군가에게 선물을 준비하며 행복해하는 일상. 사랑하며 감사하고, 배려하는 모습은 그대로인데 자주 찾아오는 통증을 견디는 일이 더해졌다. 큰 병에 걸리고 수술도 하고 힘든 시간을 지나오셨다. 이제 노쇠의 길을 걸으면서도 소녀의 웃음을 잃지 않고 계시다. 아름다운 수녀님을 위해 기도한다.

펜데믹 중인 2021년의 기록이다.

시와 편지, 일기를 읽으며 덩달아 마음이 단순해지고 맑아지는 착각에 잠시, 빠졌다.

* 한 편의 시처럼

오래오래 생각해서

짧게 쓰는 시

길게 늘렸다가

짧게 압축하는 시

 

짧을수록 오래 읽는

시가 좋았다

시처럼 살고 싶었다

(47쪽)

* 내가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게 더 많구나, 세상엔 이것저것 배워야 할 것들이 참 많기도 하구나 하면서 요즘은 빔 프로젝트 활용법도 배우고 환자로서 혈당 체크하는 법, 혈압 재는 법도 배워가는 중이다. 과일이나 과자를 먹을 때도 원산지나 설명서를 챙겨보고,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도 표기된 연도를 확인하여 자칭 해설사가 됩니다. "수녀님들이 즐겨 먹는 비비빅은 1975년, 석빙고는 1950년부터 있었으니 역사가 꽤 오래되었네?" 하며 유머와 농담도 즐길 수 있는 매일 40분간의 저녁 담화 시간을 좋아합니다. (140쪽)

*

하늘은 푸른데

나는 아프다

꽃은 피는데

나는 시든다

사람들은 웃는데

나는 울고 있다

어디에 숨을 수도 없는

이내 들키고야 마는

오늘의 나

내가 아픈 것을

사람들이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아직

살아 있음을 기뻐하라고?

맞는 말인데

너무 아프니까

자꾸 눈을 감게 돼

옆 사람이 도움도 물리치게 돼

- 이해인의 시 <통증 단상> 중에서 (204)

* 아주 오래전 제가 암투병을 하는 병상에서 나름대로 정한 4가지의 생활 실천을 아직도 글이나 설교에 인용하는 분들이 많아 그 내용도 간략히 공유하고 싶습니다.

1) 무엇을 달라는 청원 기도보다는 이미 받은 것에 대한 감사를 더 많이 하겠다는 것

2) 늘 당연하다고 여기던 일들을 기적처럼 놀라워하고 감탄하는 연습을 자주 하겠다는 것

3) 자신의 실수나 약점을 부끄러워하지말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여유를 지니도록 애쓰겠다는 것

4) 속상하고 화나는 일이 있을 때 흥분하기보다는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어질고 순 한 마음을 지니려고 애쓰겠다는 것 (276쪽)

* 2021. 4.25. 일. 부활 4주일, 성소 주일

...

오늘따라 오후엔 바람이 많이 불었지. 통증이 언제 어디서 올지 예측불허의 삶을 사는 노년기의 수녀들. 그래도 웃으려면 지속적인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침대에 똑바로 안눕는다고 마구 화를 내는 친구 수녀의 잔소리도 밉지 않고 오히려 정겹게 느껴지는 주일. 혼자서 빙그레 웃어본다. (329쪽)

* 2021년 12.12. 일

기쁨! 하고 부르면 기쁨이 온다! 그래그래 자꾸자꾸 불러야만 온다. 부르기 싫어도 불러주어야 해. 기쁨에 대한 나의 짝사랑은 끝이 없는 길, 마침내는 짝사랑을 온 사랑으로 만들리라. (3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