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사람이랑

89세, 고운 손

칠부능선 2024. 2. 22. 22:42

시인회의 모임날이다.

서현에서 9401를 탔는데,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분이 나를 옆에 앉으라고 이끈다. 내게 "자리 잡아두었다" 며 웃는다. 자리에 앉아 옆을 보니 손에 메니큐어가 예사롭지 않다. "이 손톱 손질 어떻게 하신거에요?" 하고 물으니 심심해서 직접하셨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모자도 코트도 보라색이다. 멋지세요. 사진 찍어도 될까요? 하니 손을 모아주신다.

보라색을 좋아해서인지 외롭게 살았다고 하신다.

지금 89세인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1살에 결혼해서 5녀1남을 두었는데 남편이 41살에 저 세상을 갔다고 하신다. 그후 혼자서 6남매를 키웠다고 하신다. 모두 결혼해서 잘 살고 분당에 딸 셋, 서울에 딸 하나. 막내딸은 일본에 살고, 손자녀가 13명이라고 한다. 지금은 아들네랑 함께 사신다. 집으로 콜택시를 불러 광역버스 정류장까지 와서 버스타고 서울을 나가 친구들을 만난다. 함께 사는 며느리 숨통 트라고 자주 외출을 하신단다.

빵빵한 배낭을 열어 보이신다.

컵라면, 화장품, 간식봉지, 손뜨개수세미... 뒤적거리시더니 장갑과 사탕모음 봉지를 주신다.

사양했으나 당신의 기쁨이라고 한다. 버스기사에게도 사탕봉지를 드렸단다. 친구들에게도 그 친구에게 요긴한 것을 찾아 준비한다고 하신다. 밥차리기 싫어하는 친구에게 물만 부으면 되는 컵라면을. 화장 안하는 친구에게 간단한 화장품을...

죽으면 가져갈 수 없는 돈인데 친구들 밥 사주고 이렇게 소소한 선물 건네는 게 얼마나 좋으냐 하신다. 휴대폰으로 게임도 하고, 하이네 시도 좋아한다고도 하신다. 이름을 물으니 전화번호까지 알려주신다. 인사동까지 오는 시간에 만리장성을 풀어놓았다.

모진 시간을 잘 건너오신 사연과 여전히 잘 살아내고 계신 모습에 감탄한다. 89세까지 친구 만나러 다니는 것 자체가 큰 복이다.

적당히 늙어서 좋다. 노인은 비슷하게 늙은 사람이 편안한 법이다.

나는 아직 푹 늙지 못해 저렇게 손톱을 가꿀 시간이 없다. 언젠가 도전해볼 일이다.

딸과 며늘은 샵에서 손톱관리를 하던데... 난 그런 시간과 돈이 아깝다. 아직은.

오랜만에 인사동 '현조'에서 7인이 모였다.

먼저 식사를 하는데 내일이 보름이라고 보름나물을 내놓았다. 주인이 직접 내오는 음식이 살갑다.

브레이크타임까지 쓸수 있는 배려가 좋아서 다소 비싸지만 좋은 장소가 고맙다.

코스로 나오는 음식의 시작이다. 나머지 못 찍고 열심히 먹었다.

나는 짧은 시 세 편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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