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에 읽을 수 있는 두께지만 아껴서 읽었다.
강건모는 10년 전 내 세 번째 책을 만들어준 편집자다. 지금은 그 출판사를 떠나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다. 그때 첫 느낌이 깜짝 놀라게 수려한 용모였다. 게다가 유능하고 친절했다.
그는 제주에 자리를 잡았다. 격렬하나 고요하게... 궁금했던 일상과 사유에 한참 빠졌다.
1990년 가을, 그가 열살 때 안면도 핵폐기물설치 계획을 안면도 반핵항쟁으로 막아낸 이야기도 알게 되었다. 산소발생기를 항상 옆에 작동시켜야 하는 안면도 어머니께 감사일기를 쓰게하고 제주에서 홈CCTV를 보며 응원하는 모습이 애틋하다.
'다정하게 스며들고 번지는 것'에 온 마음을 열어야겠다. 모든 인연의 무탈을 빌며.
<1부 다정함, 2부 상상력, 3부 내재율>로 이루어진 그 어질고 깊은 생각들을 거듭 소환할 것같다.
* '기다리다'는 동사는 언제나 목적어를 필요로 한다. 기다림의 대상이 없다면 그 행위의 의미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
이제 나는 기다림의 목적어가 우리를 설레게 하면서 동시에 괴롭게 하는 무엇임을 깨닫고, 인생의 어순을 바꿔 쓰는 노력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나는 기다림을 쓴다.' '나는 기다림을 노래한다.' '나는 기다림을 살아간다.' 어순만 바꿨을 뿐인데 삶을 대하는 관점이 조금은 달라진 것을 느낀다.
(83쪽)
* 뻔한 그것이 아니라, 나였다가 너였다가 우리였다가 기억 속 그것이었다가 끝내 헛것으로 눈에 비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헛것은 규범이 없다. 헛것은 무방비하다. 헛것은 자유다.
어떤 눈은 난분분 내리지 않고 완강히 솟구친다. 땅에 닿기도 전에 치솟는다. 가쁘게 승천하는 눈발들 사이로, 생각인지 기억인지 모를 문장들이 나풀거린다. 나는 내 몸에 점점이 파인 하얀 구덩이들을 얼얼하게 내려다본다. (118쪽)
*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어떻게 존재할지 스스로 선택하는 일이다. 생각해보니 나도 그렇다. 어릴 적 말을 더듬던 소년이 덜 쓸쓸해지려고 쓰기 시작한 글이 지금은 덜 괴로워지는 법을 구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책, 사진, 음악, 영상 모두 나라는 도형의 꼭짓점을 이루는 요소이지만, 그 중심에서 너울 치는 글쓰기야말로 나를 가장 나답게 하는 존재 방식이다. (181쪽)
* 멀리 사는 친구에게 가끔 이런 메시지를 보냅니다. "오늘은 얼마나 다정했어?" 무탈히 지내길 바라는 친구의 일상이 궁금할 때 이런 질문은 유용합니다. - 책장을 덮으며 (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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