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나비 목걸이 / 최화경

칠부능선 2023. 12. 18. 00:29

부모의 지나친 관심과 간섭에 숨 막혔던 나는 진정한 자유를 찾아 헤냈다. 그 누구도 , 나조차도 나를 구속할 수 없는 그런 세상을 향해 모험을 하고 싶었다. 결혼 후에도 이런 환경이 달라지지 않자 더 늦기 전에 뭔가를 시도하자며 시작하게 된 것이 글쓰기였다. 아직도 여전히 스스로 규정한 틀 속에 갇혀 살고 있긴하지만 누구에게도 종용당하지 않고 내 스스로 내 삶의 주체가 된 것만큼은 큰 수확이다.

- 책을 출간하며

작가의 말이 글쓰기를 시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올 것이다.

'자유와 실존의 날개를 펼치다'

최화경 선생의 화려한 모습에 자유와 실존과 일탈까지 기대했지만 이내 마음을 내려놓았다.

시작과 끝을 떠난 언니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언니에게 향하는 애틋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그는 인연된 사람과 동물, 사물에 대한 관심이 섬세하며, 여행 기록도 친절하고 상세하다. 흔치 않은 유복한 환경에서 겪는 일들도 솔직한 토로에 위화감을 무화시킨다. 나는 뜬금없이 체홉의 '귀여운 여인'이 떠오른다.

* 쇼핑중독자인 나도 '바라기'를 줄이기가 '버리기'보다 훨씬 어려울 듯싶다.술독에 빠져 허우적대며 포도주를 마시더라도 스스로 조절하여 죽지는 않았던 디오니소스 같은 노련한 절제자가 되려고 나 역시 현재 많이 노력하는 중이다. (83쪽)

* 우리는 고만고만한 아이들과 씨름하던 비좁은 집에서 남편 친구까지 들여 북적이며 한 달간을 서로가 불편하게 지냈었다. 그는 더 친한 30년 지기도 하룻밤조차 재워준 일이 없었다며 그때 무척 감동했었다. 그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 한 달 투숙비에 버금가는 값비싼 선물을 보내주자 그제야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잘 해줄 걸 하는 후회를 했다. 그동안 몰래 툴툴거렸던 것에 대한 반성을 단번에 하게 해준 걸 보면 명품의 위력이 내게도 대단하긴 하다. (85쪽)

* 나이지리아의 작가 치누아 아체베가 말했다. 내가 누구인지는 남이 가르쳐 줄수가 없다고. 앞으론 어떤 폭도가 들이닥쳐 나를 유린하다 해도 나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내 제품에 대한 자부심을 기반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테다. (98쪽)

* 사춘기를 지나면서도 반항다운 반항 한 번을 해보지 않았던 내 삶에 대해 진저리가 쳐진 중년의 어느 날 난 운동화 뒤축을 구겨신었다. 이 소심한 반항 하나만으로도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101쪽)

*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무의식적인 우울감들을 쇼핑으로 해소해 왔던 것 같다. 꼭 내 것이 아니어도 좋았다. 그냥 아름다운 것들에 정신이 팔리고 때로는 값싸고 질 좋은 것이라서 감탄하며, 그 순간만큼은 중복되거나 불필요하다거나 요즘 너무 많이 산 것은 아닌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쇼핑몰들은 내 의식의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곳이다. (218쪽)

* 어린 딸을 잃은 슬픔으로 날마다 울며 지내던 어떤 엄마가 하루는 울다 지쳐 잠을 자던 중에 꿈같기도, 환상 같기도 한 꿈을 꾸었다고 한다. ...... 딸은 슬픈 표정을 짓고 혼자 있었고 게다가 등에는 혼자서 지기엔 너무 힘들어 보이는 무거운 주전자를 메고 쓸쓸하고 외롭게 서 있었다.

"너도 가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으렴"

"엄마, 난 갈 수가 없어, 나도 친구들과 재미있고 놀고 싶지만 엄마가 울 때마다 난 이 주전자에 엄마의 눈물을 담아야 하거든"

깜짝 놀란 엄마는 "아가야 어서 가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아라. 엄마가 다시는 울지 않으마. ... 너무 미안하다."

이스라엘의 어느 전시실에는 <주전자를 멘 소녀>라는 제목의 그림이 걸려 있다고 한다.

터널 출구의 환한 빛이 보이기 시작하면 아직 목적지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마치 내 여정이 끝난 것처럼 그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죽음으로 가는 그 길도 그러하리라. (2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