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을 어슬렁거리다 주문한 책이다. 김미옥님이 추천한. 난 그에게 세뇌된 듯하다. 그가 좋다는 책을 저항없이 주문한다.
- 따뜻한 송년 특집
2023년 한 해가 지고 있습니다.
‘불우이웃돕기 북 콘서트’를 개최합니다.
화가이자 시인인 김재진의 『헤어지기 좋은 시간』을 텍스트로 2시간 동안 진행하는 송년 특집입니다. 詩의 모델이 된 무명 가수, 붕어빵 장수, 노년의 아름다운 실제 인물들이 콘서트에 등장합니다. 노래하고, 붕어빵을 굽고, 낭송하고, 대화하며 함께 합니다.
시집 속의 인물들이 걸어 나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詩 「가난의 자격」의 주인공, 자신의 수술비를 전액 불우이웃돕기에 내어놓았던 붕어빵 장수 이상복씨. 詩 「아름다운 사람」의 모델, 빛바랜 명화 같은 82세 풀빛 여사. 詩 「바람의 시 2」의 무명이지만 유명인 가수 손지예. 그 밖에 동료 시인의 악기 연주 등이 함께 합니다.
장소는 홍익대 미대학장을 역임하신 신상호 작가께서 자신의 미술관을 흔쾌히 제공하셨습니다. 이분의 작품은 영국의 대영박물관도 소장하고 있습니다.
신영수 관장이 직접 미술관의 각 컬렉터 룸을 안내하고 설명도 합니다.
지난번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저는 감탄사를 연발했는데 기대를 충족하리라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게 무료입니다. 물론 참가비도 없습니다.
콘서트에 참여하는 관객은 개당 천 원에 판매되는 붕어빵을 드시고 책을 사셔도 안 사셔도 됩니다. 여기서 나온 수익금은 모두 어려운 이웃을 찾아 불우이웃에게 전달합니다.
이 따뜻한 송년 모임에 가고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는 게 중요하다. 나를 콕 집어서 오라고, 꼭 오라고 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따뜻한 시선이 시인의 장기이겠지만, 비틀지 않은 시가 편안하다. 순한 눈으로 건져낸 사색이 내 일인듯 절절이 다가온다.
헤어지기 좋은 시간 2
네가 나의
심장인 줄 알던 날은 두근거렸다.
뚜껑을 들썩이며 끓고 있는 라면처럼
세상 모든 것이
증기기관차 내달리듯 입김을 뿜고
황혼이 좋은 날엔 자전거를 타고
홍혼의 심장을 향해 달렸다.
네가 나의 심장이 아니라
일몰의 그림자라는 것을 알았을 땐 슬펐다.
헤어지고 싶은 날에 편지를 쓰고
모서리 돌아서 안 보이는 곳까지
자전거도 타지 않고 걸어서 갔다.
세상이 나의 심장이라 믿는 날은 벅찼지만
세상은 언제나 부정맥이라
멈추어 선 기관차처럼 레일을 벗어났다.
(50쪽)
재심 청구
기쁨의 유통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관절에 생긴 통증이 그것을 가리킨다.
일용할 양식을 마트에서 사며
유통 기간을 제대로 확인한 적이 없다.
버려야 할 것을 냉장고에 그대로
넣어두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유통 기간이 지난 사람들이 퇴출된 채
폐기될 시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이정표는 어디 있나?
유통 기간을 폐지하겠다며
하느님과 맞장 떴던 사람들이
재심을 청구하기 위해 하늘나라로 간다.
하느님의 심기를 건드린 그들이
승소할 가능성은 없다.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포장지에 적힌 날짜를 확인하며
늙어빠진 희망이 성형수술을 하겠다며
거울에 주름살을 비춰보고 있다.
(1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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