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 백석

칠부능선 2022. 6. 15. 22:25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백석

 

 

나는 이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나는 무서워 오력을 펼 수 없다

자 방안에는 성주님 

나는 성주님이 무서워 토방으로 나오면 토방에는 디운구신 

나는 무서워 부엌으로 들어가면 부엌에는 부뚜막에 조앙님

 

나는 뛰쳐나와 얼른 고방으로 숨어버리면 고방에는 또 시렁에 데석님

나는 이번에는 굴통 모퉁이로 달아가는데 굴통에는 군대장군 

얼혼이 나서 뒤울 안으로 가면 뒤을 안에는 곱새녕 아래 털능구신 

나는 이제는 할 수 없이 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대문간에는 근력 세인 수문장 

 

나는 겨우 대문을 삐쳐나 바깥으로 나와서 

밭마당귀 연자간 잎을 지나가는데 연자간에는 또 연자당구신 

나는 고만 디겁을 하여 큰 행길로 나서서

마음 놓고 화리서리 걸어가다 보니 

아아 말 마라 내 발뒤축에는 오나가나 묻어 다니는 달걀구신 

마을은 온데간데 구신이 돼서 나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