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배롱나무 / 이면우

칠부능선 2022. 6. 27. 10:12

배롱나무

이면우




  배롱나무 붉은꽃 피었다 옛날 배롱나무 아래 볼 발갛게 앉았던 여자가 생각났다.

  시골 여관 뒷마당이었을 게다 나는 눈 속에 들어앉은 여자와 평생 솥단지 걸어놓

고 뜨건 밥 함께 먹으며 살고 싶었다

  배롱나무 아래 여자는 간밤의 정염을 양 볼에 되살려내는 중이던가 배롱나무 꽃주

머니 지칠줄 모르고 매달 듯 그토록 간절한 십년 십년 또 오년이 하룻밤처럼 후딱 지

나갔다

  꽃 피기 전 배롱나무 거기 선 줄 모르는 청년에게 말한다 열정의 밤 보낸 뒤 배롱나

무 아래 함께 있어봐라 그게 정오 무렵이면 더 좋다 여자 두 뺨이 배롱나무 꽃불 켜고

쳐다보는 이 눈 속으로 그 꽃불 넌지시 건너온다면

  빨리 솥단지 앉히고 함께 뜨건 점심 해 자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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