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공짜는 없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칠부능선 2022. 5. 21. 04:06

공짜는 없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공짜는 없다. 모든 것은 다 빌려온 것이다.

내 목소리는 내 귀에게 커다란 빚을 졌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한 대가로

스스로를 고스란히 내놓아야 하며,

인생에 대한 대가로 인생을 바쳐야 한다. 

 

자, 여기 모든 것이 마련되어 있다.

심장은 반납 예정이고,

간도 돌려주기로 되어 있다.

물론 개별적인 손가락과 발가락도 마찬가지.

 

계약서를 찢어버리기엔 이미 늦었다.

내가 진 빚들은 전부 깨끗이 청산될 예정.

내 털을 깎고, 내 가죽을 벗겨서라도.

 

나는 채무자들로 북적대는

세상 속을 조용히 걸어 다닌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날개에 대한 부채를 갚으라는

압력에 시달리는 중.

또 다른 이들은 싫든 좋든 어쩔 수 없이

나뭇잎 하나하나마다 셈을 치르는 중.

 

우리 안의 세포 조직은

송두리째 채권자의 손으로 넘어가버렸다.

솜털 하나, 줄기 하나도

영원히 간직할 순 없는 법.

 

명부의 기록은 모두 다 정확하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는 빈털터리가 될 예정이다.

 

나는 기억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 무엇 때문에

이 복잡한 청구서를

스스로 펼쳐 보게 되었는지.

 

이 거래에 대한 저항을 

우리는 '영혼'이라 부른다.

이것은 명부에 포함되지 않은

유일한 항목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