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개의 시간 / 임이송

칠부능선 2021. 12. 12. 16:05

 

원주에 자리잡은 임이송 작가의 소설책이다. 강릉문화재단과 강원도에서 기금을 받아 묶었다.

20여년 전, 수필반 인연이다. 자주 만나지는 못했어도 마음으로 애틋하다.

드문드문 전해온 그의 소식에 안타까움이 많았다. 잘 건너와 이제 평온한 듯하여 고맙다. 그 격랑의 시간이 소설을 쓰게 했나 싶기도 하다.

주변에 '진국'이라고 말하는 몇 사람 중에 꼽는다. 

언제든 그를 만나면 든든한 보양식 같은 걸 먹이고 싶다. 그리고 게이샤 커피가 아닌 보양차로 속을 채워주고 싶다.

말미에 있는 <작가의 말>을 먼저 읽어서인지 자꾸 수필적 시선으로 읽게된다. 

밀도있게 잘 엮어서 단숨에 읽힌다.

박수를 보낸다. 

 

 

반려동물 화장장에서 시작하는 <개의 시간>, 말로만 듣던 생소한 풍경을 자세히 본다. 

대를 잇는 고난 속에서 같은 마음결을 가진 사람이 사랑을 하고, 또 상처를 보듬는다. 내 귓가에 파도 소리가 남았다.

 

<완벽한 겨울>은 동시대를 살았는데.. 나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도시에서 산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가혹한 현실이라고 할까. 외할머니에게 듣는 이야기처럼 푹 빠져서 읽었다. 속 깊은 다섯 살 명희를 보면서 사람은 크면서 속이 깊어지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어려서부터, 아니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의 그릇과 됨됨이가 정해진 건 아닐까. 

모든 체험은 창작의 재산이다. 

 

<방을 건너다> 25층에서 투신한 남편을 어떻게 받아들일수 있을까. 부부가 무엇인가, 관계의 허상에 대해 생각했다.

 

* 한 달이 넘도록 멍한 얼굴로 있었다. 맹수에게 새끼를 빼앗긴 여우가 뼈만 남을 때까지 숨어서 보다가 맹수가 간 뒤에야 새끼의 뼈를 물고와서 바라보았던 것처럼, 망연자실하게 지냈다. (68쪽)

 

<진영슈퍼> 쑥스러워서 욕을 찰지게 못하는 작가의 모습이 보인다. 시장통의 여자들의 수다 속에도 격이 있었다. 

 

<임플란트>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심연은 깊고 깊어 그 바닥을 보는 일은 슬프다 못해 쓰리다. 

 

<다른 봄> 작가의 브리즈번 시절이 배경이 되었다. 온통 보랏빛인 나무, 자카랜다 아래서 맞는 봄은 몽환이나 그 아래 사연은 처절하다. 제 정신을 붙잡고 살아 낼 수 없는 사건들, 그럼에도 사랑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이 애달프다. 

 

* 형민이 좋아한 초롤릿이 모두 있는 곳이다. 달콤한 것을 좋아한 그는 정작 달콤하지 않았다. 쓴맛이 느껴질 때가 더 많았다. 그런 그가 왜 달콤한 것에 집착하는지 나로서는 불가사의하다. 나는 쌉싸름한 맛의 와인을 좋아한다. 쌉싸름함 뒤에 오는 아주 미세한 달콤함도 좋아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상관없다. 사람이든 음식이든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단내를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관계가 친밀하고 깊어지면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달콤함이 좋다. (155쪽)

 

<플라밍고 인형> 주변에 휭행하는, 지금도 무심히 실금이 깊어지고 있는 가족의 균열을 본다. 핏줄의 폭력이 미화되는 현장, 같이 또 따로도 충만할 수는 없는지... 

 

*다르다는 건 새로워야 하고, 새로운 건 좋은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아버지를 도려낸 자리에 좀처럼 새로운 것들이 들어오지 않았던 것처럼, 앞으로 전혀 나아가지지가 않았다. (194쪽)

 

<경이 엄마> 궁금증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