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격리생활 / 노정숙

칠부능선 2021. 10. 1. 12:55

 

격리생활

노정숙

 

 

느닷없이 코로나19 확진자가 되어 경기 제7생활소에 들어갔다. 목이 간질거려서 감기약 3일 처방을 받고, 첫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에 엑스레이를 찍는데 혼자다. 조용한 긴 복도를 걸어 엘리베이터를 탔다. 적막 속에서 휴대폰으로 전하는 지시에 따른다.

이틀 지나니 이곳의 패턴이 다 외워졌다. 아침 7시경이면 방송이 시작된다. 아침식사를 배달할 것이니 복도에서 인기척이 나도 절대 현관문을 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 후 준비가 끝났으니 배달된 식사를 속히 방으로 가져가라고 알린다. 한 시간 쯤 지나면 소독을 할 것이니 시끄러워도 문을 절대 열면 안 된다는 방송이 이어진다. 내내 왕왕대는 방송, 인기척에 문을 열면 방역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게 골자다.

아침 8시와 오후 5, 방송이 나오면 체온과 협압, 맥박수, 산소포화도를 체크해서 휴대폰 앱을 통해 전달한다. 삼시세끼 받은 도시락은 절반도 못 먹고 그대로 폐기물통에 들어간다. 저녁이면 또 다시 스피커의 지시에 따라 폐기물통을 내어놓고 새 통을 들여놓으면 하루의 일과가 끝난다.

나흘이 지나고부터 우리말 안내방송이 끝나면 영어 안내가 나온다. 보이지 않지만 그들의 당황하는 모습이 쉽게 떠오른다. 그들은 또 타국에서 얼마나 막막할까.

숲 사이로 길이 보인다. 그 길로 아침이면 퇴소자가 걸어서 나간다. 오후에는 새 확진자를 태운 구급차가 들어온다. 그리곤 내내 적막강산이다. 오후가 되면 침대자리까지 깊숙이 들어오는 햇살을 반긴다. 개망초 낭창한 허리는 잔바람에도 살랑거린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풍경이 애틋하다.

적당한 공복감을 간간이 느끼고, 신선한 채소와 과일이 그립다. 커피 한 잔, 사과 한 알에 행복해지는 시간이다. 여기서는 평소에 안하던 짓을 해야 한다. 책 멀리하기, 게으름 피우기, 멍 때리기, 덜 먹기, 많이 자기. 그럼에도 내 안테나는 가족과 친구 병실에 가 있다.

내내 톡이나 전화로 안부를 묻고 전한다. 이 노출증과 관음증 사이에 시간이 오고 또 간다. 억지 격리 중이지만 고립감은 없다. 밖에 푸른 것들의 눈짓도 위로가 된다. 인기척에 반응해서도 안 되고, 인기척을 내서도 안 되는 희귀한 열흘을 지내고 풀려났다. 예의를 갖춘 서늘한 방송생활과 함께 바이러스는 나를 비루하게 훑고 갔다.

 

내 생일을 챙겨주느라 함께 밥을 먹은 친구가 코로나19 확진자가 되었다. 친구는 처음 음성이었다가 이틀 후, 열이 나고 오한이 들어 구급차를 타고 격리 병원으로 갔다. 그곳 5인실의 풍경이 그려지며 깔끔이 친구가 얼마나 불편할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자가격리를 하고 있을 그의 외아들과 남편까지 마음에 걸린다. 평온하게 산 가족이 처음 겪은 재난이다.

친구는 폐렴까지 와서 일주일 정도는 심하게 아팠고, 열흘이 지나자 몸 안의 노폐물이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한 병실, 다섯 명 중 세 명이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나중에는 염증수치가 올라가서 애를 태웠다 18일 만에 퇴원한 친구는 지병이던 편두통과 허리 아픈 증상이 없어졌다고 한다. 공포로 생각했던 음압실의 공기가 특별한 모양이다.

처음에 밥도 못 먹고 앓고 있을 때 5인실의 환자들은 서로 먹을 것을 챙겨주고 위로하며, 그들과도 친하게 되었단다. 코로나19 확진 경험으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다고 나를 위로한다.

치사율을 보면 그리 겁낼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친구의 상태를 전해 들으며 기도가 절로 나왔다. 이런 때를 위해 평소 기도발을 높여놓아야 한다. 열렬한 친구는 성격대로 격렬하게 앓고, 있던 병도 떨치고 거뜬해졌다.

 

이 대사건의 시작은 주말 가족모임이었다. 역학조사 결과 그때 아들이 식당에서 옆자리 4명이 확진자여서 감염된 상태였다. 아들, 며느리와 나는 증상이 약해서 생활소로 가고, 딸과 사위는 병원으로 갔다. 가족 중 그야말로 노약자인 남편과 손자 둘은 음성으로 2주간 자가격리를 했다.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사위는 보름 만에 8kg가 빠져서 우람하던 몸이 늘씬해졌다. 기간은 다르지만 우리 가족은 보름 지나서 모두 일상으로 돌아왔다. 돌아보니 감염에 기준이 없다. 몇몇 대통령과 운동선수도 확진자가 된 걸 보면, 면역력도 복불복이나 운발에 달린 듯하다.

방역수칙을 어긴 적 없는 우리도 황당했지만, 우리로 인해 주변에 고통과 번거로움을 겪은 사람들에 대해서 마음이 무거웠다. 코로나19 초반에는 확진자가 주변의 눈총이 따가워서 직장을 그만 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얼마나 기막히고 억울했을까.

격리생활을 마치고 집에 오니 친구들이 꽃을 한 아름 사다주고, 청폐탕과 무조청, 과일과 반찬도 날라다 준다. 어떤 분은 내게 개선장군이라고도 한다. 졸지에 민폐녀로 등극한 기분이다. 주변에서 내가 최초의 감염자다. 바라보면서 애타는 마음을 떠올리면 내가 체험한 게 다행이다. 공식적으로 1%가 내게 닥치면 100%.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와 내 일이 된 입장의 괴리를 느낀다.

경험해도 좋은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해야하는 또 다른 경험이다. 악전고투가 있어도 혼자 감당한다면 좋은 경험이다. 내겐 아무 증상이 없는 역병인데도 나를 만난 친구가 호되게 당한 걸 보니 참담했다. 바이러스에 리트머스 종이가 필요하다. 감염된 순간 파랗게 혹은 빨갛게 변해서 표식을 할 수 있다면, 바로 자가격리에 들어갈 텐데. 누군들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겠는가. 의지 너머의 일은 아직도 나를 키운다. 너는 얼마나 작고 작은 존재인가. 탄식이 이명처럼 울린다.

폭풍은 지나갔다. 그러나 도처에서 바람은 더 거세게 몰려오고 있다. 이 피할 수 없는 광풍 앞에 몸을 낮추고 바람타기를 해야겠다.

 

 

<한국산문> 10월호  vol.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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